한국은 암호화폐거래소의 토큰 발행을 애초부터 금지한 만큼 FTX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의 교훈이 ‘무조건 안돼’ 정책에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오히려 투자자 보호와 산업 부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정책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는 자체적으로 토큰을 발행할 수 없다. 특금법은 현재 국내에서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는 유일한 법으로 사업자 신고와 연관된 규정을 다룬다. FTX 같은 사태를 예견하고 거래소 토큰을 금지하기보다는 당시 국내에서 거래소 토큰을 악용한 사기가 판을 치면서 이 내용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선제적 규제가 주효했기보다는 거래소의 활동 반경을 극도로 제약해 불씨 자체도 출현하지 못하게 한 것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모든 불씨가 산불이 되는 게 아니듯 적절한 통제로 난방이나 요리에 불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백훈종 샌드뱅크 이사는 “이번 FTX 파산은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아니라 엔론 사태에 비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경영진이 계획된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백 이사는 “경영진의 사기 행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규제를 마련하되 암호화폐 관련 산업을 전반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병국 크립토퀀트 대표도 “이번 사태는 암호화폐 자체 문제가 아니라 기존에 월가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재연된 것”이라고 짚었다. FTX에서 고객 자산을 함부로 운영했던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산업 진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피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규제 일변도 정책이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상호 델리오 대표는 “짧게 보면 현재와 같은 규제가 사고를 방지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규제 일변도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산업을 고사시키는 방안”이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되면 장기적으로 부실 기업이 증가하고 사고가 더 많이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FTX 파산 사태와 무관하다는 점을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신뢰할 수 있는 거래소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선제적으로 움직인 거래소는 코빗이다. 코빗은 국내 최초로 코빗이 보유한 암호화폐 수량을 매일 확인할 수 있도록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리플(XRP) 등 코빗의 지갑주소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업비트·빗썸 등이 공시를 통해 정기적으로 보유한 암호화폐 수량을 공개하는 것에서 나아가 코빗에서는 고객이 매일 거래소의 거래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보호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빗썸도 추가 정보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빗썸 관계자는 “분기마다 회계법인을 통해 분기보고서와 재무실사보고서 공시를 통해 당사 고객 자산 내역을 포함해 재무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며 “추가적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고객 자산 보호 측면에서 회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정보제공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코인원 관계자도 “건전한 투자 문화 조성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