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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보다 힘들어…기업 망할 판인데 정부는 되레 옥좨"

입력: 2019- 09- 19- 오전 02:38
© Reuters.

대한상공회의소가 18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 참석한 기업인들은 정치에 파묻혀 경제 활성화 논의가 사라진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 두 번째)이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기업들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것 같다.”(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반(反)기업 정서에 친노동정책까지…. 기업하는 게 죄죠.”(이재하 대구상의 회장)

속마음을 죄다 드러낸 기업인들의 말은 예상보다 거칠었다. 호소라기보다 아우성에 가까웠다. 울분을 토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공장을 돌려 (대출) 이자 내기도 버겁다. 기업은 죽어가는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18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 참석한 기업인들 얘기다.

흔들리는 기업인들

국내 18만 상공인을 대표하는 전국 상의 회장 50여 명은 오랜 경기침체 탓에 기업들이 말라죽어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역 경제 악화와 기업 자금난 등에 대한 우려도 터져나왔다. 지나친 친노동·반기업정책 등 ‘정책 리스크’ 얘기를 꺼내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진 데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전쟁 등으로 대외 여건마저 나빠지면서 “이젠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란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역 경제와 이를 떠받쳐온 기업들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일감이 뚝 끊기면서 공장마다 가동률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감원에 들어갔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한철수 회장(고려철강 회장)은 “금융위기는 일시적 쇼크였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구조적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것 같다”며 “주변 기업 절반 이상이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허용도 부산상의 회장(태웅 회장)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은 경영난이 심각한 자동차 회사와 조선사 관련 부품 업체가 밀집해 다른 곳보다 훨씬 어렵다”며 “참담한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되레 반기업 정책만 밀어붙이고 있다는 불만이 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및 준비 안 된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추진 등 친노동정책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는 호소였다. 탈원전 등 ‘일방통행’ 정책과 툭하면 공장을 멈추게 하는 산업안전법(산안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등 ‘규제 쓰나미’도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하 회장(삼보모터스그룹 회장)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간 기업인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한철수 회장은 “정책이 기업 반대쪽으로 가다 보니 투자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한 지방상의 회장은 “기업을 위한 정부 정책이 사실상 실종됐다”며 “중소기업이 연명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치 리스크에 못 살겠다”

기업인들은 “정치 때문에 못 살겠다”는 불만도 제기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정국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정치’만 남고 ‘경제’는 실종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가을 국회가 ‘올스톱’되면서 주요 경제 법안이 줄줄이 정쟁에 묻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컸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및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등 굵직한 법안들이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각종 경제활성화 및 규제 완화 관련 법안 처리는 ‘언감생심’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강신 인천상의 회장(영진공사 회장)은 “경제는 정치에 발목이 붙잡혀 있는데, 정치권은 경제와 기업 탓만 하고 있다. 그냥 (경제를) 내버려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땅에 떨어진 기업인의 사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기업들은 해외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정작 안에서는 손가락질 받고 있는 처지를 개탄했다. “기업인들이 모이면 ‘기업하기 싫다, 기업하는 사람만 죄인’이란 얘기를 주고받는다”(이재하 회장)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기업인은 “자식한테 회사를 물려줄 엄두가 안 난다. 공장 문을 닫고 이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산=도병욱/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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