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28일 이사회가 결정한 구현모 KT 대표(가운데)의 연임에 어깃장을 놓고 나서면서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사에 참석한 구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켓인사이트 12월 29일 오후 5시32분
민간 기업 압박에 국민연금이 동원되는 ‘수난사’가 이번 정부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경영계에 퍼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KT의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정조준하면서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땐 소위 ‘재벌 개혁’에 국민연금을 활용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KT, 포스코와 대형 금융지주 등 민영화된 소유분산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데 국민의 노후 자금을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122조원을 굴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분 5% 이상 보유 기업은 264개, 10% 이상 보유 기업은 45개에 달한다. 민간 기업 인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실력 행사’에 재계 전체가 긴장하는 이유다. ○‘인사 찍어내기’에 국민연금 동원 이상 기류가 감지된 건 지난 8일이다. 올 9월 선임된 금융위원회 출신인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뒤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소유분산기업) 회장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고착하고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든지, 현직자 우선 심사 같은 차별과 외부 인사 허용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는 건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만 해도 2018년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의 세부 원칙을 일부 개정하겠다는 원칙론적 발언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27일 갓 임명된 서원주 신임 기금운용본부장(CIO)도 취임 일성으로 또다시 소유분산기업 CEO 인사를 거론하면서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서 본부장은 다음날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를 차기 CEO 최종 후보로 선정하자 곧바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서 본부장의 공식 입장이 ‘이사 해임안’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수준의 주주 활동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前 정부도 최소한의 절차는 지켰다문제는 이런 국민연금의 개입이 시스템 밖의 비공식적 트랙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주주 활동에 나서야 할 경우 △대상기업 선정 △비공개 대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주주제안 등 다섯 단계의 절차를 밟도록 원칙을 세웠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145개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했지만 공개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한 곳은 3월 공개서한을 보낸 남선알미늄 한 곳이다. 단번에 적극적 주주 활동으로 이어져 기업 경영과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일종의 ‘완충장치’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국민연금 이사장이나 본부장이 직접 기업 이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예고하거나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는 행위도 의사결정기구인 수탁위나 기금위 절차를 밟아 이뤄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나서 “대기업 일가의 위법 행위에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며 국민연금을 재벌개혁에 동원한 전 정부에서도 최소한의 절차는 지켰다는 게 국민연금 안팎의 지적이다. 기금운용위원회와 산하 전문위원회의 내부 검토 끝에 수위를 낮추거나 백지화한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 정책도 다수였다.
KT CEO 선임 건과 관련해서는 절차를 뛰어넘을 만한 ‘명분’도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다. 자본시장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구 대표에게 불만이 있다면 주총 안건에 반대 의사를 밝히거나 선호하는 CEO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면 될 일”이라며 “이사회까지 무시하고 장외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는 “KT도 나름대로 절차를 마련했지만 국민연금은 기금위에서 공론화하는 절차를 건너뛰고 메시지를 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병화/차준호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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