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NASDAQ:INTC) CEO 팻 겔싱어. 출처= 인텔 뉴스룸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INTEL)이 자사의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에도 추진된 인텔의 과감한 투자는 미래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한 과감한 베팅으로 해석됐다. 이는 동시에 현재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견제하려는 유럽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인텔의 과감한 베팅
AP·신화통신 등 다수의 글로벌 미디어들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인텔이 이스라엘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250억 달러(약 32조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공표했다고 밝혔다.
각 미디어들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이스라엘 재무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인텔이 이스라엘 남부 키르얏 갓(Kiryat Gat)에 자사의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신규 공장에서는 반도체의 원자재인 웨이퍼가 생산될 예정이다. 한편, 인텔은 이스라엘의 ‘자본투자 장려법’에 따라 총 투자액의 12.8%에 이르는 보조금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이어 인텔은 유럽 지역 반도체 생산역량의 확장 계획을 공표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독일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조건 아래에 인텔이 독일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반도체 공장 확장에 300억 유로(약 42조1000억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의 협의서에 서명했다.
인텔은 독일에서도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수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슈피겔 등 독일 현지 미디어들은 “인텔의 투자에 대해 독일 정부는 100억 유로(약 14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텔의 올해 1분기 부진한 실적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상당히 과감한 결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1분기 인텔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84억달러(약 23조5777억원) 대비 36% 감소한 매출 117억달러(약 14조9000억원)를 기록했다. 여기에 분기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27억6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인텔에게 2023년 1분기는 사상 최악의 분기로 기록됐다.
인텔 CPU. 출처= 픽사베이
과감한 투자의 배경
연이어 발표된 인텔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의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생산력 측면의 약점 극복 그리고 EU(유럽연합)와의 이해관계 일치 등을 그 배경으로 이야기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치솟았던 미국 내 반도체 수요에 대해 인텔을 비롯한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첨단 반도체의 기술이나 관련 장비는 보유하고 있었으나, 대량으로 공급돼야 할 반도체의 직접적 생산이 주로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의 의회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한 여러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인텔 역시 첨단 반도체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했고, 그를 위해서는 나름의 결단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2021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 선언부터 최근의 대규모 인프라 확장 투자까지 이어진 인텔의 장기 계획은 ‘생산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모두 그 맥락이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독일에 대한 인텔의 투자에 대해서는 아시아에 편중된 반도체 경쟁력을 견제하기 위한 EU와 인텔(혹은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EU 국가는 첨단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가 거의 유일하다. 반도체 기술, 생산력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EU는 아시아에 주도권을 내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EU는 반도체 공동연구 연합을 구성해 각 소속 국가의 정부가 이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수년 전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인텔의 행보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반도체 동맹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그들을 적절하게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과 아시아에 뒤쳐진 반도체 주도권을 노리는 유럽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이는 독일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 펫 겔싱어 인텔 CEO의 실제 발언에서도 그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산업(반도체)을 아시아에게 내줬다”라면서 “이를 되찾으려면, 우리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