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탑재되는 고용량 배터리. 사진=셔터스톡
K-배터리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질까. 전기차의 ‘캐즘(Chasm, 일시적 수요정체)’ 현상으로 저조한 실적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계가 북미 진출을 통해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현지 시장 분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배터리·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을 실시, 지난달 3일에는 FEOC(해외우려집단) 지정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나 소재를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또 지난달 14일(현지시각)에는 미국이 무역법 301조에 근거, 중국산 전기차에 100%, 배터리에 25%에 달하는 관세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산 저가 배터리의 과잉공급을 견제하고 ‘중국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도록 한 것이다.
또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통해 전기차의 배터리 부품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하는 등 일정 요건을 만족하면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도록 규정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h당 35~45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 연장선에서 K-배터리의 미국 생산기지 거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 기회의 땅, 美로 진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가운데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배터리 업계의 총력전도 치열하다.
먼저 현대차그룹과 SK온은 지난해 조지아주 정부로부터 7억 달러(약 9100억원)규모의 지원을 받고 합작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배터리 공장은 앞으로 20여 년간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총 2억4700만달러(약 3200억원) 규모로 재산세를 감면받고, 9800만달러(약 1300억원) 가량의 혜택도 추가로 받게 된다.
삼성 SDI도 단독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과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스텔란티스 합작 1공장의 경우 빠르면 올해 연말 가동에 들어간다는 전망도 나온다.
백악관은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삼성·SK·현대차 등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이 555억 달러(약 74조원)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 차원의 지원도 계속된다. 지난달 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IRA 관련 민관합동회의’를 개최, 업계의 공급망 자립화 노력을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 관련된 국내 투자에 9.7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금융·세제 및 인프라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정부간 협력채널을 통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력(FTA) 체결 국가에서 광물 확보를 위한 기업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및 안정적 관리는 여전히 우리 기업이 이뤄내야 할 중대한 과제”임을 강조하며 “우리 배터리-자동차 업계 간, 그리고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공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 AMPC를 향한 배터리3사 시동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시장을 향한 보이지 않는 벽을 쌓을 때,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KS:373220)·삼성SDI (KS:006400)·SK온)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북미 현지화를 빠르게 가동시켜 AMPC(생산세액공제)의 규모를 늘리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테네시, 조지아, 오하이오, 애리조나 등에 총 342GWh 규모의 공장건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중장기 수요 대응이나 북미 선제적 생산능력(캐파)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신증설 투자는 선택과 집중으로 지속할 것”이라면서 “투자 우선순위를 철저히 따지고 능동적인 투자 규모 및 집행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설투자(CAPEX) 집행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 (KS:006400)도 2027년까지 북미에서 100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스텔란티스 합작 1공장의 조기 가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지난 2022년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와 총 114억을 투자해 블루오벌SK를 출범했다. 대규모 공장인 블루오벌SK가 가동되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북미 시장 공략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들어서는 북미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쓰던 닛산이 IRA의 영향으로 SK온의 배터리를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美대선 결과…IRA 우려도
글로벌 정세 흐름에 따라 배터리 업계의 북미 진출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IRA가 폐지되면서 배터리 3사를 향한 수 조원대의 AMPC 혜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일명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책적 연결성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IRA를 통해 미국 세금으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회사에 보조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중단시킬 것"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전기차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지만 지난달 10일 백악관과 외신 등에 따르면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IRA의 청정에너지 세액공제는 미국의 법이며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 법이 충실하게 시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