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에 대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해외우려집단(FEOC) 규정 적용이 유예됐다. 흑연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한숨을 돌렸다고 평가하면서도 공급망 다변화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최근 IRA FEOC 정의에 대한 최종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흑연을 '현실적으로 추적 불가능한 핵심광물'로 분류하고 FEOC 적용 유예 기간을 올해 말에서 오는 2026년 말로 2년 확대한 게 핵심이다.
규제 유예는 국내 업체들의 공급망 다변화 시간을 벌어줬다는 평가다. FEOC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우려 국가와 관련된 기업을 의미한다. FEOC가 생산한 흑연 등 핵심광물을 조달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경우 친환경차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한국은 흑연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천연흑연의 97.2%, 인조흑연의 95.3%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규제 유예 기간 동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비중국산 흑연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FEOC 규정 적용이 한 차례 유예된 만큼 추가적인 규제 완화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탓이다. 흑연의 경우 단기간에 새로운 공급망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 FEOC 적용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 공급망 확보 계획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국내 주요 배터리 3사는 세계 각국에서 흑연을 조달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6월 호주 노보닉스와 인조흑연 공동개발협약(JDA)을 체결했다. 양사가 인조흑연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게 골자다.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10년 동안 5만톤 이상의 물량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시라와 천연흑연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내년부터 천연흑연 2000톤을 공급받고 향후 협력 규모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삼성SDI (KS:006400)는 지난해 8월 호주 시라와 천연흑연 기반 음극재 공급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 7월까지 제품 실증을 진행하고 적합 판단이 나올 경우 2026년부터 연간 1만톤의 음극재를 공급받는 내용이다. 해당 음극재는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미국 합작법인에서 사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온은 지난 2월 미국 웨스트워터와 천연흑연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웨스트워터가 2027년부터 4년 동안 앨라배마 켈린턴 정제 공장에서 생산한 천연흑연을 SK온 미국 공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공급 규모는 최대 3만4000톤으로 예상된다. SK온은 2022년 시라와 천연흑연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고 지난해 1월 우르빅스와 음극재 JDA에 나서는 등 공급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지원을 통해 기업들의 공급망 확보 노력을 뒷받침할 방침이다. 공급망 자립화 관련 국내 투자에 9조7000억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정부 간 협력 채널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 광물 확보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민관 노력으로 2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면서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및 안정적 관리는 중대한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