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 본사 전경. 사진=CATL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성긴 그물망을 중국이 또 뚫었다. CATL (SZ:300750)에 이어 세계 배터리업계 8위 궈시안의 미국 자회사 고션이다. 연속으로 뚫리는 그물망에 북미 시장을 텃밭으로 삼고자 했던 K배터리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난 14일(이후 현지시간) 폭스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중국 배터리 기업 궈시안 미국법인인 고션의 미시간주 공장 증설을 위한 부지 매입을 승인했다. 고션은 대주주를 폭스바겐으로 변경해 미국 국방물자생산법(DPA)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폭스뉴스는 미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24억달러 규모 양‧음극재 공장을 사실상 승인했다고 평가했다.
IRA 구멍 숭숭…북미서도 중국계와 정면대결 예상
배터리 소재 공장마저 IRA를 뚫자 K배터리에는 전운이 감돈다. 배터리업계 일각에서는 당초 중국 배터리 견제용이었던 IRA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쉴 정도다. 실제 IRA 우회 사례는 올해 빈번히 일어났다.
올초 포드는 CATL에 기술제휴를 하는 형태로 미국 내 35억달러 규모 배터리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해 K배터리에 충격을 안겼다. 테슬라는 지난 6일 미국 에너지부에서 CATL 배터리가 장착된 ‘모델3’의 IRA 보조금 전액 지급을 확인받았다. 테슬라는 미국 내에서 조립된 배터리 부품을 중국의 CATL 공장으로 보내 보조금을 충족 기준을 맞췄다.
이번 승인에 우려가 커지는 이유는 고션이 배터리 소재 회사이기 때문이다. 양·음극재는 IRA에서 배터리 소재로 분류돼 북미 제조가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재료가 무거워 배터리 셀 공장에 가까운 지역이 더 이익이다. 하나가 뚫리기 시작하면 두세개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배터리 셀부터 시작해 소재가 IRA를 통과하며 결국 법안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고션이 생산하는 소재가 LFP 배터리 소재라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배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K배터리에 영향이 크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LG에너지솔루션도 7조2000억원 상당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원통형‧ESS LFP 배터리 공장 건설 투자를 약속한 만큼 K배터리 몫이 중국에 넘어갔다는 아쉬움도 상당하다.
유진투자증권 코스닥벤처팀은 “재무부 산하 CFIUS(해외기업들의 미국 투자의 적정성 심사기구)가 전일 중국 고션의 미시간 양‧음극재 공장을 승인했다”며 “바이든 정부의 중국 배터리에 대한 스탠스가 ‘부분적 허용’으로 비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IRA 보조금 허용 규정이 ‘미국 내 생산 고집’에서 FTA, 준FTA 국가로 확대되는 것과 동일한 정책기조로 향후 발표될 ‘우려대상 선정’ 규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배터리업계 정리…CATL·BYD 키울까 걱정
일각에선 중국산 배터리업계 줄도산도 K배터리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합병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것과 같다. 실제 수직계열화로 배터리 가격을 낮춘 BYD는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SNE리서치) 성장률이 유일한 세자릿수(108.3%)를 기록했다. 규모의 경제를 키워 단가를 낮추면 보다 빠른 점유율 상승도 가능할 전망이다.
LFP 배터리를 완성차업체가 좋아한다는 것도 중국계 기업 성장을 전망케 하는 이유다. 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CTP 기술을 적용하면 삼원계 배터리 보다 약 30% 낮은 가격에 유사한 성능을 누릴 수 있다. 전기차 보급형 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 배터리 가격을 필사적으로 줄이려는 완성차 업체들이 LFP 배터리를 눈여겨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IRA가 중국기업 거름망이 되지 못한다면 K배터리는 생각보다 넓은 판매 영역을 뺏길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올해 K배터리 3사도 LFP 배터리 개발을 선언하며 빠르게 양산 준비에 나섰다. 고객사 요구에 따라 그간 해왔던 고부가가치 삼원계 배터리에 더해 대중성을 갖춘 LFP 배터리 필요성에 동의해서다. 지난 14일 독일 뮌헨에서 개막한 ‘인터배터리 유럽 2023’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LFP 배터리 양산용 신제품, 삼성SDI는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차세대 제품도 준비 중이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현재 전고체 배터리와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단결정 양극재 등이 실제 전기차에 놓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액을 반고체로 만들어 화제 위험성을 줄인 것이 특징이며, 46파이 원통형 배터리는 배터리 셀 자체를 단단한 벽으로 구성해 모듈을 없애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단결정 양극재는 기존 다결정 양극재보다 충격에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한 배터리사 고위관계자는 “중국은 이미 내수 시장에서 어떤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수출 중심인 우리나라가 상위 10개사에 3사나 포진해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이라며 “LFP 배터리도 겨울에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단점이 있다. 국내 기업들이 배터리 기술 향상에 매진하는 만큼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