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주가 급락하자 국내외 정보기술(IT)주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돈이 빠지고 있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금리가 상승세를 타고 성장주에 대한 경고음이 본격적으로 나오던 지난9월부터 발을 빼기 시작했다. 미국 기술주 급락이 가시화된 10월에는 2300억원가량이 빠져나갔다. 시장 전문가들은 IT주의 내년 실적 전망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주가 하락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낮아졌다고 섣불리 뛰어들진 말라고 조언했다.
美 기술주 조정에 ‘쑥대밭’ 된 IT펀드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외 IT 관련주에 투자하는 IT펀드 29개는 최근 한 달간 평균 2.05%, 석 달간 8.36%(지난 16일 기준)의 손실을 냈다.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모회사 알파벳)’으로 대표되는 미국 대형 기술주가 미국 채권금리 급등과 글로벌 수요 둔화 우려 등으로 지난달 큰 폭의 조정을 받은 영향이다. IT펀드에 대한 ‘경고음’은 9월 나오기 시작했다. 8월 2.10%의 수익을 낸 IT펀드는 9월 2.07% 손실을 냈다. 10월엔 손실폭이 11.21%로 커졌다.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자금이 빠지고 있다. 8월 말 1조6813억원에 달했던 IT펀드 설정액은 9월 말 1조6243억원으로 600억원가량 줄었다. 기술주 폭락이 현실이 되자 10월엔 대량 환매가 쏟아졌다. IT펀드의 10월 말 기준 설정액은 1조3946억원으로 2297억원(14%) 감소했다.
해외펀드들도 IT주 비중을 줄이고 있다. 미국 월가 펀드매니저들의 포트폴리오에서 IT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후 최저로 낮아졌다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최근 밝혔다. 지난달 IT주 주가가 급락해 가격 부담이 작아졌지만 IT 업종 비중을 확대했다고 응답한 펀드매니저는 18%에 불과했다.
가격 싸졌어도 ‘저평가’ 아닌 이유
미국 기술주는 최근에도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지난 15일 기대에 못 미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도는 4분기 매출 추정치를 내놓자 시장의 실망은 더욱 커졌다. 16일 엔비디아는 18.8% 급락했고, 업황 부진 우려로 경쟁사인 AMD도 3.9% 하락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역시 각각 3.0%, 1.6% 하락하는 등 기술주 전반이 약세를 나타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S&P500 기술 업종의 내년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주당순이익/주가)은 9월 말 17.7배에서 최근 15.8배로 낮아졌다. S&P500 인터넷 업종의 PER도 19.5배에서 18.3배로 하락했다. 가격 부담이 작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투자에 나서긴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표면적 가격 부담은 낮아졌지만 소프트웨어 업종과 인터넷 업종 등의 2019년 실적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저평가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중국과의 무역분쟁과 인터넷산업 규제 위험도 불확실성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적 추정치가 올라가고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뚜렷한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 기술주의 큰 폭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눈높이를 낮추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낫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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