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10월01일 (로이터) - 이탈리아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예산안을 발표해 유럽연합(EU)에 반기를 든 가운데, EU는 이탈리아와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는 기조를 취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지나치게 높은 재정적자 목표를 고수할 경우에는 EU가 더욱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유로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향후 3년 동안의 재정적자 목표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로 설정했다. 이는 이탈리아가 EU의 부채축소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28일(현지시간) "EU와 이탈리아간 관계에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EU의 권고와 제재가 이탈리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신중한 발언이다.
EU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이탈리아가 EU 집행위원회에 공식제출하기 전까지 예산안을 수정할 수 있도록 시장이 설득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오는 10월 중순까지 EU 집행위원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날 유로 가치는 약 2주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은 정부의 예산안 발표 이후 3주 만에 최고치까지 급등했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목표가 10월 제출시한까지 수정되지 않을 경우 EU 집행위원회는 이를 기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EU 집행위원회가 각국의 예산안을 기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EU가 유례없는 상황에 스스로 발을 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탈리아가 EU의 권고를 무시할 경우 위기는 고조될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 제재 절차를 밟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징계 결정은 최종 지표가 나온 이후에만 내릴 수 있다. 최종 지표는 내년 4월 발표된다.
게다가 내년 5월에는 유럽 의회선거가 예정돼있다. EU 내 절차보다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이탈리아 제재 결정을 내리는 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9년 동안 EU의 재정적자 관련 제재 대상에 속해있으나 제재를 피해왔다. 지난 2016년에도 EU 집행위원회는 재정적자 한도를 초과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부과한 벌금을 감면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유로존 19개국 중 세번째로 크다. 때문에 이탈리아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그 여파는 유로존 전체까지 번질 수 있다. 이를 두고 불만을 품고 있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이탈리아가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을 시도할 수도 있다.
유로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이탈리아 정부는 이마저도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무시하지 않는다.
당국자들은 이탈리아가 반항적인 태도를 고수할 경우 EU 지도자들이 정상회의에서 해당 사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EU 지도자들은 그리스 부채위기가 한창일 때도 수차례 모여 대책을 논의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는 EU 정상회의 의제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시장의 압력이 줄어들 경우, EU 국가들은 이탈리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지속불가능한 수준까지 상승을 기록하고 이탈리아 은행의 주가도 금락세를 이어간다면, EU의 구제계획은 이탈리아와 유로존 전체에 적용돼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여기까지 다다르더라도, 도움을 청하는건 이탈리아의 몫이다.
EU의 한 당국자는 "이탈리아는 뜻을 굽히려하지 않는다. 그리스처럼"이라며, EU 내 일부 인사들은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탈리아의 완전한 탈퇴가 위험 요소다"라고 덧붙였다.
(편집 박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