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킨 ‘미국 자동차업계의 전설’ 리 아이어코카(리도 앤서니 아이어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 2일(현지시간)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사인은 파킨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의 자택에서 숨졌다.
아이어코카는 1924년 펜실베이니아주의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리하이대를 나와 프린스턴대에서 공학석사를 받았다. 포드에 엔지니어로 입사했지만 영업사원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승승장구했다. 36세 때인 1960년 부사장이 된 그는 젊은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스포츠카 ‘머스탱’을 개발해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자동차의 하나로 만들었다. 이 차는 출시 18개월 만에 100만 대가 팔렸다. ‘머스탱의 아버지’란 별명을 얻은 그는 1970년 12월 포드 회장에 올랐다. 당시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처음으로 연봉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1978년 포드 창립자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와의 의견 충돌로 갑작스럽게 해고된 그는 몇 달 뒤 경쟁사인 크라이슬러로 옮겨 회장을 맡았다. 그는 파산 위기에 놓인 크라이슬러에 정부 구제금융을 끌어들였고, 1980년 한 해 1만5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오일 쇼크 와중에 서민용 소형차로 개발한 K카에 이어 포드에서 구상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미니밴’이 큰 인기를 끌면서 크라이슬러는 회생했다. 새로운 유형의 차량인 미니밴은 최대 7명이 탑승할 수 있어 미국인들의 가족여행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1980년 17억달러 손실에 허덕였던 크라이슬러는 1984년 24억달러 순이익을 올리는 등 성공적으로 턴어라운드했다.
이런 구조조정 과정을 쓴 자서전 《아이어코카》는 1984년 나오자마자 첫 해 200만 부가 팔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직접 자동차 광고에도 출연했던 그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1987년 지프, 람보르기니 등을 인수하며 크라이슬러를 미국 자동차업계의 명실상부한 ‘빅3’로 키웠다. 1992년 회장에서 물러난 그는 자선사업, 저술 등에 시간을 쏟아왔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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