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농업통상과장(사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28일 오후 2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브리핑룸. ‘쌀 관세율 513% 확정’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선 박병홍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협상의 모든 공을 김 과장에게 돌렸다. 정부는 이날 △수입 쌀에 513% 관세를 부과하고 △5% 관세가 붙는 ‘의무 수입물량’(TRQ·40만8700t)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쌀 관세화 협상 내용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대 쌀 생산국과 2015년부터 벌여온 관세율 협상에서 한국의 요구사항을 모두 관철시킨 ‘완승’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현재 ㎏당 800~900원인 미국·중국산 쌀에 관세 513%가 붙으면 가격이 5000원으로 치솟는 만큼 국산 쌀(㎏당 2100원)의 경쟁 상대가 안 된다. TRQ 물량도 늘어나지 않아 국내 농가의 피해는 거의 없을 전망이다. “상대가 있는 국제협상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성과를 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란 얘기가 관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김 과장은 농식품부가 꼽은 일등공신이다. 중앙부처 과장급으론 이례적으로 6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협상 전략을 짜고 실무협상도 주도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그를 농업통상과장 자리에 앉힌 건 2013년 9월. 당시는 1995년 WTO 가입과 함께 20년 동안 유예받은 쌀 개방 시점을 1년여 앞둔 시점이었다. 행정고시 국제통상직(45회)으로 공직에 들어와 농식품부에서 국제협력과 식량정책과 농업협상과 등을 거친 그를 적임자로 낙점했다.
그리곤 김 과장에게 두 가지 미션을 줬다. △쌀 관세율을 최대한 높게 따낼 것 △TRQ 물량을 늘리지 말 것. “불가능한 숙제”란 얘기가 농식품부 내에서 돌았다. 상대가 있는 만큼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정부가 2015년 관세율을 513%로 WTO에 신고하자 5대 쌀 생산국들은 “관세율을 200~300%로 낮춰야 한다”고 이의 신청을 냈다.
지리한 협상은 4년 넘게 계속됐다. “한국은 쌀 소비가 줄어드는 매력 없는 시장”이란 김 과장의 설명은 상대국 담당자를 만날 때마다 되풀이됐다. 상대국들이 협상에 지친 2018년 말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관세율 513%와 TRQ 총량 동결의 반대급부로 5대 쌀 생산국에 TRQ 물량의 절반만 주던 걸 100% 주겠다고 제안한 것. 어차피 국제입찰을 통해 들여온 TRQ 물량도 대부분 이들 5개국으로부터 들여오던 터라 한국은 손해볼 일이 없었다. ‘한국은 별 볼 일 없는 시장’으로 여겨온 이들은 안정적인 물량을 추가 확보하는 조건으로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김 과장은 “6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덕분에 긴 호흡으로 ‘작전’을 수행한 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며 “앞으로도 이 분야를 계속 파고들어 농업통상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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