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8일(현지시간)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겨냥해 지대지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한경DB
국제유가가 치솟고 있습니다. 작년 말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현재 67~68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지요. 어제는 장중 5% 넘게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배럴당 70달러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는 게 주요 배경입니다. 전면전 가능성은 낮지만 양국 갈등은 최고조이죠. 공급 확대로 안정세를 보여온 국제유가 흐름에 강력한 돌발 변수가 생긴 겁니다.
향후 관심사는 이란이 미국의 추가 경제 제재 등에 반발해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냐에 쏠려 있습니다. 이란이 봉쇄에 나설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 원유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합니다. 더구나 한국으로 향하는 중동산 원유는 모두 이 해협을 거쳐야 하지요.
정부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연일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있습니다. 원유값 상승 자체도 문제이지만, 국내로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칫 수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 및 민간부문이 갖고 있는 석유 비축량을 모두 합쳐봐야 최장 6개월을 버틸 수 있을 뿐입니다. 정부는 지난 8일 한국가스공사 등 유관기관들과 ‘석유·가스 수급 긴급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강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원유는 우리 경제에 생명줄과 같습니다. 차량 및 발전 연료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제품으로 가공해 재수출하는 원재료이기도 하지요. 특히 원유 구입비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과 연동하는 구조입니다. 유가가 상승하면 LNG 가격도 똑같이 오르지요. 국제유가 상승이 전기요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겁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LNG 발전 의존도는 꾸준히 높아져 왔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국제 시세가 일정하게 낮은 우라늄과 달리 LNG 가격은 정세 변화에 따라 등락 폭이 매우 크다”며 “원자력발전을 LNG로 대체하면 전기요금이 국제 상황에 따라 널뛰듯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전력 전력통계속보(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에 따르면 작년 1~10월의 LNG 발전 비중은 평균 24.7%였습니다. 탈원전을 본격화하지 않았던 2016년(22.4%) 대비 2.3%포인트 상승했지요. 원전 비중은 같은 기간 3.6%포인트 빠졌습니다. 어느 국가든 원전을 즉각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는 LNG밖에 없기 때문이죠.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현실화 가능성은 없지만 천연우라늄 가격이 지금보다 10배 오른다고 가정해도 발전 연료비는 지금의 kWh당 6원에서 16원 정도가 되는 것”이라며 “천연우라늄 가격이 연료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LNG 가격은 단 두 배만 뛰어도 연료비가 kWh당 160원이 돼 국민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며 “문제는 LNG 가격 급등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유가 급등락에 쉽게 흔들리는 환경인데도 우리 정부는 수 년 전 어렵게 확보해놓은 우량 유전들을 잇따라 매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를 압박해 북해 광구 ‘톨마운트’ 지분(25%)을 팔아 치우도록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이죠. 톨마운트는 추정 매장량 8900만 배럴의 우량 자산으로, 연내 본격 생산에 나설 계획이었습니다. 공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에너지자원 시설을 모두 매각하고, 신규 개발사업도 일체 진행하지 말라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해외 자원개발 트라우마’ 때문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를 걱정합니다. 자원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할 만큼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죠.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이 또 한 번 도마에 오르게 됐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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