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제조업체 동산기획의 김진수 대표(51)는 2002년 가장 행복했다. 월드컵으로 시청 앞 광장이 태극기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자체 생산능력으론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인근 봉제공장을 뛰어다니며 부탁해 수량을 겨우 맞췄다. 그는 “2002년 태극기 물결은 동산기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1980년대 말 태극기 사업을 시작했다. 보훈처에 다니던 지인의 말이 계기가 됐다. “국내에 태극기를 제대로 만드는 업체가 없어 블루오션”란 말에 솔깃했다. 처음엔 사업성만 보고 시작했지만 점점 애국심과 자부심이 생겨났다. 초기엔 태극기만 만들다가 설비를 늘려 깃대와 깃봉도 직접 생산했다. 최근엔 5억여원을 투자해 자동화 생산설비도 갖췄다. 김 대표는 “세계의 다양한 국기 가운데 태극기 문양이 가장 복잡한 편”이라며 “사람 손으로 재단과 봉제를 하면 실수가 종종 생겨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동산기획이 추정하는 국내 태극기 시장 규모는 연 100억~12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약 70%를 동산기획이 생산한다. 국군과 관공서 등이 주요 고객이다. 김 대표는 “최근 태극기의 민간 수요가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국경일 등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엔 8월15일 광복절 전까지 200만장 이상의 태극기를 팔았다. 광복절을 앞두고 행정안정부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 “부족함이 없도록 생산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당부하기도 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하지만 지난 달 말까지 누적 판매량이 20만장에 그친다. 김 대표는 “과거 판매 속도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몇 년 간 태극기를 게양하자는 정부의 홍보물이나 캠페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정부가 태극기 게양 홍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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