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한국을 먹여살린 산업은 가발이었다. 1970년대 전체 수출의 10.8%를 차지했다. 여성들이 고이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가발을 미국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후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한국의 가발산업은 수십 년간 ‘잊혀진 산업’ 취급을 받았다. ‘사양산업’이라고 평가받는 가발 시장에서 연 매출 800억원을 올리는 기업이 있다. 국내 가발업체 1위 하이모다.
지난 19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홍인표 회장)의 차녀 홍정은 부사장은 “하이모는 처음부터 수출이 아니라 내수시장을 바라보고 설립된 기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 등 이미 성숙한 해외 가발 시장을 보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이모는 창업 이후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홍 부사장은 “가발산업이 사양산업군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며 “한국처럼 타인의 눈을 중시하는 문화에선 잘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라고 강조했다.
제작부터 관리까지…1 대 1 맞춤
홍 회장은 1987년 하이모를 설립했다. 이미 수많은 가발 생산기업이 동남아시아로 대거 넘어가면서 가발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든 때였다. 뒤에선 “막차를 탔다”고 수군댔다.
하이모의 경쟁력은 가발 제작부터 사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프리미엄 1 대 1 맞춤 서비스’에서 나온다. 가발을 맞추러 매장에 가면 3차원(3D) 스캐너로 두상을 측정한 뒤 고객의 두상과 머릿결, 색상 등에 맞게 모(毛)를 구성해준다.
가발의 생명은 ‘가발 같지 않아야 한다’는 것. 홍 부사장은 “이는 잘 만들어진 가발을 어떻게 스타일링해 주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고 말했다. 하이모 전 지점에는 지점당 평균 10여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근무한다. 일반 미용실에서 최소 2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는 스타일리스트들이 갓 생산된 가발을 고객이 원하는 모양대로, 가발을 쓴 것 같지 않게 잘라준다.
머리카락이 자랄 때마다 하이모 고객은 미용실 대신 하이모 매장을 찾는다. 3~4주에 한 번씩 방문하면 가발 모양에 맞게 머리를 다듬어주고, 가발도 세척해준다. 미용실에서 가발을 벗기 싫은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다.
‘가밍아웃(가발을 썼다는 것을 공개하는 일)’을 원하지 않는 고객들을 위해 매장 동선도 폐쇄적으로 설계했다. 대기실엔 칸막이가 있어 다른 사람과 함께 기다릴 필요가 없고, ‘대기실-상담실-스타일링방’은 바로 이어져 복도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다. 머리를 감겨주고 잘라주는 스타일링실도 모두 1인실이다. 홍 부사장은 “전 지점을 직영점으로만 운영해 서비스 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며 “수시로 본사에서 하는 스타일링 교육을 받아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가발 전문가들’”이라고 강조했다.
3D 스캐너 직접 개발하는 가발업체
하이모가 경쟁사들과 다른 점은 ‘필요한 모든 기술은 독자 개발한다’는 것이다. 홍 부사장은 “하이모 가발에만 쓰이는 특수 모발인 ‘넥사트 모발’은 물론이고 두상을 측정하는 데 필요한 3D 스캐너까지 2001년 일찌감치 직접 개발했다”고 말했다. 전체 인력 700여 명 중 연구개발(R&D) 관련 인력이 10%에 달한다. 홍 부사장은 “국내 가발업체 중 3D 스캐너를 사용하는 곳은 하이모가 유일하다”며 “가발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유명 가발 기업에도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발 같지 않은 가발’을 만들어주는 기술 특허도 있다. 홍 부사장은 “가발이 진짜 머리같이 보이려면 앞머리 부분과 가르마가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앞머리의 뿌리 부분 1㎜를 살짝 밝게 염색하고, 가르마 부분의 매듭 부분을 감추는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수출 품목으로 다시 부상한 가발
하이모는 가발을 수출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근엔 수출액을 늘리기 위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붙여 자연스럽게 숱이 많아 보이게 하는 가발인 ‘페더라인’을 개발했다.
홍 부사장은 “기존 증모용 가발은 접착 부분이 두꺼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며 “페더라인은 기존 가발보다 4분의 1 수준인 직경 1㎜ 마이크로링으로 고정해 가발 티가 안 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하이모 가발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생산했지만 이 제품은 기계로 제작한다. 노동집약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자동화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이 기계 역시 하이모가 독자 개발했다. 페더라인은 지난해부터 미국과 일본 등에 수출되고 있다. 홍 부사장은 “국내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만큼 하이모 역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며 “매출 중 수출 비중을 30% 수준까지 늘려 외형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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