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캐피털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후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70조원 규모의 가계·기업대출을 보유한 캐피털사가 부실화할 경우 금융권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여전채 소화불량 ‘조달위기’
1일 캐피털업계에 따르면 홍콩계 베어링PEA가 대주주인 애큐온캐피탈은 최근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계열사인 애큐온저축은행으로 대출 고객을 유도하고 있다. 애큐온캐피탈의 여신 담당자들을 애큐온저축은행으로 파견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큐온저축은행을 자회사로 둔 애큐온캐피탈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한다. 예금을 받아 대출에 투입할 수 있는 저축은행으로 고객을 돌렸기 때문이다. 신한·KB·하나·농협캐피탈 등 금융지주사 계열이거나, 비교적 신용도가 튼튼한 자동차회사 전속(캡티브) 할부금융사도 당장은 여유가 있다. 그러나 유사시 자금을 공급해줄 대주주 여력이 부족하거나,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신규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이미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캐피털 시장의 자금조달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달 15일부터다. 이날 키움캐피탈(신용등급 BBB+) 회사채 매수주문 규모가 170억원으로 모집액인 500억원에 한참 못 미쳤다. 이후 여전채 신규 발행은 물론 기존 채권의 차환도 막힌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1주일 새 1조원 규모의 캐피털채가 상환되기만 했다”며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채안펀드 ‘급한 불’ 끌까
캐피털업계는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 여신이 대거 부실화하면서 25개 리스사 중 19개가 무너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조달위기를 겪으면서 두산캐피탈 등 대형사들이 대주주가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대기업 여신이 대거 은행권으로 옮겨간 2000년대 이후 캐피털사들은 ‘자동차 금융’을 주력 먹거리로 삼았다. 금리가 점점 내려가면서 자본조달이 화두로 떠올랐고, 비상시에 대비해 불용자금을 마련해둔 회사도 늘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상황이 어렵진 않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달위기가 본격화했고, 코로나19 여파로 실물경기가 나빠져 리스·할부 영업이 위축됐다. 전세버스, 통근버스 등 상용차 할부금융과 공장설비 등 산업 리스를 다루는 회사 사정이 특히 나빠졌다. 한 캐피털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피해자에게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라는 정부의 조치가 시행되면 당장 상반기 수익이 기존 사업계획보다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이달부터 캐피털업계의 자금조달 수단인 여전채를 사주겠다고 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대출 수요가 커진 중소기업·자영업자의 대출 창구인 캐피털사 부실을 막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2008년엔 최초 조성된 5조원의 채안펀드 중 5000억원을 여신전문회사에 투입했지만, 업계 구조조정을 막을 순 없었다”며 “최대 20조원 규모의 펀드 자금을 여전채에 얼마나 투입할지, 어떤 신용등급까지 물량을 배정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훈/김진성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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