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개미들은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두 가지 부류였다. 초조해진 개미들은 장이 시작되자마자 1000억원 넘게 주식을 팔아치웠다. 더 큰 손실을 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는 5% 가까이 떨어졌다. 장중 한때 2100선이 붕괴됐다.
기회를 엿보던 개미들은 하락폭이 커지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대기 중이던 자금을 동시에 밀어넣었다. 개미들이 치고받는 사이 키움증권의 주식 거래 시스템은 한때 먹통이 됐다. 미국 주가가 폭락했지만 국내 증시가 2%대 하락하는 데 그치며 버텨낸 이유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개인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분석이다.
○HTS도 마비시킨 개미의 힘
개미들이 외국인과 기관이 쏟아내는 물량을 받아내면서 12일 코스피지수는 2.04% 하락한 2132.30에 마감됐다. 미국 증시가 폭락한 탓에 우려가 커졌지만 낙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코로나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급락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지수가 10,000선 고지에 올라선 지 하루 만에 5.27% 하락한 9492.73에 장을 마쳤다. 주가가 짧은 기간에 급격히 상승한 탓에 일부 조정이 이뤄진 데다 미국 전역에 산발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키웠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경제에 미칠 충격이 상당할 것이란 우려도 주가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다우존스지수는 6.90%, S&P500지수도 5.89% 하락했다. 유럽 증시 역시 일제히 4~5%가량 급락했다.
국내 증시도 장 초반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 순매도액이 약 1500억원까지 늘어나면서 코스피지수는 2084.63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주가는 낙폭을 줄여나갔다. 지난 3월 중순 급락장에서 주식 매수 기회를 놓친 개미들이 일제히 매수에 나선 영향이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키움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은 오전 9시5분부터 10시15분까지 1시간10분 동안 먹통이 됐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개장 초 입금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입금 처리가 다소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주가 급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매수 수요가 몰린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주가가 폭락한 3월에도 시스템이 마비됐었다.
○‘잠시 휴식 vs 하락세’ 엇갈린 전망
하락장을 노리는 개미들의 투자 행태는 최근 들어 더 두드러지고 있다. 5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하락한 8거래일 동안 개인들은 6조338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 투자자 예탁금은 2조원이나 늘었다. 지난달 말 43조8000억원이던 예탁금은 46조원으로 증가했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46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개인들이 국내 증시를 주도하는 흐름”이라며 “주식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개인들끼리 치고받는 형국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시장이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과 하락세로 접어든 것이란 엇갈린 관측을 내놓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미국 증시를 이끌었던 ‘코로나19 사태 안정’과 ‘경제 재개 기대감’이란 양축 가운데 코로나 안정과 관련된 축이 무너지면서 증시가 급락했다”면서 “향후에도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이 같은 모습이 재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효석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조정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기에 대한 판단이 수정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 기대가 과도했기 때문에 되돌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잠시 조정이 이뤄질 뿐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스피지수 상단은 2150~2200 전후로 예상되며 급격하게 빠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2분기 실적에 따라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장이 크게 하락할 것 같지는 않지만 최근 흐름처럼 주가가 거침없이 올라가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며 “작은 박스권을 만들면서 당분간 주가가 횡보하는 형태의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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