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원전 수출 관련 예산을 작년 수준인 31억원 편성하는 데 그쳤다. 탈(脫)원전에 따른 원전산업의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해 해외 건설을 적극 지원하겠다던 당초 약속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도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은 총 884억원 편성됐다. 올해(728억원) 대비 21.4%(156억원)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원전 해체 관련 예산이 크게 늘어났을 뿐 핵심기술 개발이나 수출 예산은 예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원전 해체 기술개발 예산은 올해 30억원이었으나 내년엔 151억원으로 5배 급증했다. 정부가 원전 해체 산업을 조기 육성한다고 공언한 데 따른 예산 배정이다. 산업부는 원전 해체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는 한편 내년 상반기 중 해체 프로젝트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2030년까지 1차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은 총 12곳이다.
정부가 수 차례 강조했던 원전 수출(전력산업 해외진출 지원) 예산은 올해 30억원에서 내년도 31억원으로 현상 유지하는 것으로 편성됐다. 원전 지속 운영에 필수인 방사성폐기물관리 기술개발 예산은 56억원에서 53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산업부 내년도 전체 예산(9조4608억원) 증가율이 23%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전 수출 및 기술 개발 사업이 ‘홀대’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출을 오히려 확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1월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체코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며 적극적인 원전 세일즈에 나섰다. 같은 달엔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유관기관들이 공동으로 서울 양재동에 ‘원전기업지원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민·관 합동으로 원전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원전 수출 및 폐기물 기술 투자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자력 관련 예산이 다른 부문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나마 올해 증액된 금액이 대부분 원전 해체 분야”라며 “성능 좋고 가격 경쟁력이 높은 신차의 R&D 대신 친환경 폐차기술 연구비만 늘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예산은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 1조1360억원보다 9.8% 늘어난 1조2470억원 책정했다. 원전 전체 예산보다 14배 넘게 많은 규모다.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3020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지원 3120억원, 발전차액 지원 3639억원,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 2395억원 등이다.
특히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 및 금융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900억원 증액됐다. 원자력 및 석탄을 줄이는 대신 대체에너지를 늘리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원자력 기술을 사장시키고, 중국보다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태양광 산업의 보조금을 늘리는 정책이 바람직한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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