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가 지난해 예상보다 더 많이 늘어나는 등 경기 확장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유통체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오프라인 매장 중 상당수가 살길을 찾지 못하고 폐업을 택하는 중이다. 2015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도 소매업체 구조조정을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리서치업체 코어리서치인사이트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올해 미국 소매업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지난 8일까지 5주 동안 문을 닫은 미국 내 소매점포 수는 2187곳에 달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수(5524곳)의 40%에 이르는 수치다. 2017년 파산보호를 신청한 아동복 업체 짐보리 매장이 749곳으로 가장 많았다.
코어리서치인사이트는 소매업계의 암담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올해 문을 닫는 점포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년간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40개에 달하는데, 이들 기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장 수를 급격히 줄이고 있어서다. 검프스, 시어스 등 유명 백화점부터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 의류업체 트루릴리전, 아메리칸어패럴 등 내로라하는 소매업체들이 2년 새 40곳이나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점포는 총 2만5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국 소비가 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미국 소매 판매는 지난해 4.6% 증가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는 ‘온기’가 돌지 않고 있다.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업체를 통한 온라인 쇼핑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류·신발업계에서 인터넷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 탓에 이들 매장의 폐업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인 1인당 평균 오프라인 쇼핑 규모는 2015년 8200달러(약 922만원)였으나 3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에는 8000달러(약 90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 ‘소비 대목’으로 꼽히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백화점 판매량은 2017년 대비 1.3% 감소한 반면 온라인 쇼핑 매출은 19.1% 증가했다.
소매 기업들의 수익이 줄어들면서 채무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소매 기업들은 그간 대출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리파이낸싱(차입금 재조달)을 하곤 했는데, 2017년 토이저러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기 시작하면서 사모펀드 등에서 제공하는 고금리 대출을 써야 하는 소매업체가 증가했다. 판매량이 잘 늘지 않는 가운데 이자 부담이 커지고 금리 인상 기조가 겹치면서 수익이 줄었다. 유명 소매업체들이 줄줄이 파산 위기에 내몰리게 된 배경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신발업체 탐스슈즈, 패션업체 네이먼마커스, 제이크루 등이 대출 결제 불이행으로 인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소매 매장이 과도하게 비용을 많이 쓰는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코어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인이 1인당 이용할 수 있는 매장 크기는 평균 2.2㎡로, 캐나다(1.5㎡) 호주(1㎡) 등에 비해 크다. 블룸버그는 “미국 소매업계 아포칼립스(대재앙)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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