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22일 인천 석남동 경인양행에서 열린 ‘제3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지난해) 2% 성장은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켜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인천=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미친 2009년(0.8%) 후 10년 만에 가장 낮고 잠재성장률(한은 추정치 2.5~2.6%)도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22일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이 1844조26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늘었다고 발표했다. 시장이 추정한 1.9%보다 높지만 2017년 3.2%, 2018년 2.7%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간신히 2%대 성장률에 턱걸이한 것은 재정 덕분이었다. 정부는 성장률 2%대 ‘사수’를 위해 작년 4분기에 도로공사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는 1.5%포인트로 2009년(2.3%포인트) 후 가장 높았다. 민간의 기여도는 0.5%포인트에 불과했다.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가 민간을 앞지른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주도 성장’ ‘재정주도 성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간 경제는 침체 징후가 뚜렷했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3년(1.7%) 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8.1%, 3.3% 감소했다. 설비·건설투자는 2년 연속 동반 감소했다. 수출은 1.5% 늘었지만 2015년(0.2%) 후 증가율이 최저치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투입으로 간신히 2%대 성장률을 지켰지만 정부주도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정부가 민간 경제주체의 활력을 북돋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투자·소비·수출 '3重 쇼크'…작년 경제 성적표 10년 만에 최악
나랏돈 퍼부어 간신히 2% 성장…잠재성장률 밑돌아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로 간신히 2%대에 턱걸이했다. 시장 예상치(1.9%)보다는 높지만 역대 다섯 번째로 낮은 성장률이다. 작년보다 성장률이 낮았던 때는 6·25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던 1956년(0.7%), 제2차 석유파동 때인 1980년(-1.7%), 외환위기 때인 1998년(-5.5%),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등 네 차례였다.
정부는 “글로벌 교역 조건 악화 탓”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난해 성장률 둔화의 가장 큰 요인은 수출이 아니라 투자와 민간소비였다. 지난해 투자는 2009년 이후, 민간소비는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나타냈다. 수출 둔화도 문제지만 기업,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들의 활력 저하가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가처분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소비와 투자를 늘리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을 본격화한 지 3년째가 됐지만 오히려 소비와 투자가 점점 위축되고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설비투자, 2년째 동반 감소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2.0% 가운데 정부 기여도는 1.5%포인트, 민간 기여도는 0.5%포인트였다. 지난해 늘어난 GDP 중 정부가 기여한 비중이 75%에 달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영향이 컸다. 지난해 정부소비는 6.5% 늘었다.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출을 크게 확대했던 2009년(6.7%) 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정부가 성장을 견인했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민간이 부진했다는 뜻이다. 설비·건설투자의 부진이 유독 두드러졌다. 지난해 건설투자는 마이너스 증가율(-3.3%)을 기록했다. 2018년 -4.3%를 기록했는데도 기저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지난해 또 뒷걸음질친 것이다. 공장에 들어가는 기계류 등의 투자를 나타내는 설비투자도 지난해 8.1% 감소했다. 2009년(-8.1%) 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다. 분기별로 보면 2018년 2분기(전년비 기준 -4.3%)부터 지난해 4분기(-4.2%)까지 7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양수 한은 통계국장은 “건설·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보이던 2017년 크게 치솟았지만 이후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감소세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설비·건설투자 부진으로 지난해 제조업 성장률은 2012년(1.4%) 후 최저인 1.4%를 기록했다. 건설업은 -3.2%로 2018년(-4.0%)에 이어 내리막길을 걸었다.
민간소비도 투자 못지않게 냉랭하다. 지난해 증가율이 1.9%로 2013년(1.7%)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과 이자, 사회보험료 등이 늘어나고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며 “또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과 규제 강화 탓에 국내 설비투자를 줄이고 해외 투자를 확대하면서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수출 증가율, 4년 만에 최저
수출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수출은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5년(0.2%) 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수출은 2018년 12월부터 작년 12월까지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5월 이후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세계 교역량이 줄었고 반도체 경기도 주춤한 여파다.
박양수 국장은 “세계 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후 가장 낮아진 것도 수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로 2009년(-0.1%) 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소득지표인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0.4% 감소했다. GDI가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7.0%)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재정 일자리 만들기 등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에 지나치게 많은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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