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의 마지막 걸림돌은 '중국의 체면'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과연 중국은 체면을 구기면서 합의할 수 있을까요? 미중 양국의 무역협상 과정을 복기해보면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겠습니다. 미국은 이번 협상을 매우 치밀하게 준비해왔습니다. 작년 12월1일 휴전에 합의한 뒤 양국은 지난 1월7일 베이징에서 첫 고위급 협상을 갖습니다. 이 때 미국은 7개 챕터(미국의 지식재산권, 무역 기밀, 기술 강제 이전, 경쟁 정책, 금융서비스 접근, 환율 조작)로 이뤄진 150페이지짜리 협상 초안을 제시합니다. 이 초안에 대해 논의할 의향이 있다면 협상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협상은 시작됐고 중국은 7개 챕터를 많은 부분을 수용합니다. 미국은 지난 2월말 관세율 인상을 연기했고 협상 타결을 긍정적으로 보는 멘트들이 쏟아집니다. 문제의 시발은 7개 챕터 이외에 붙어있는 법제화 요구였습니다. 미국은 약속을 잘 어겨온 중국에 대해 반드시 합의내용을 법제화할 것을 명시했지만, 당시 중국은 '7개 요구를 수용한다면 형식인 법제화 정도는 양보하겠지'라고 이해한 듯 합니다.
협상은 진전됐고 트럼프 말대로 7개 챕터에 대한 합의가 "95%"가량 이뤄진 이달 초, 중국은 법제화를 제외한 합의안 초안을 미국에 건넵니다. 법률보다 하위규정인 국무원 명령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겁니다. 이게 바로 이번 사태의 발단입니다. 미국으로선 법제화는 전체 요구의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워낙 말로만 합의를 하고 지킨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관세도 합의 이행상황을 보면서 철폐하겠다고 부려왔습니다. 중국의 수정된 합의안을 본 미국은 즉시 "합의를 되돌렸다"며 맹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많은 양보를 했는데, 법제화까지 하는 건 체면을 심하게 구기는 일입니다. 미국의 요구를 100% 수용하고 국내법까지 바꾸고 게다가 시진핑 주석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별장까지 가서 서명하는 건 일종의 중국판 '삼전도의 굴욕'인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도 미국은 법제화를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면합의를 하고 시행령으로 요구를 들어준 게 많았죠. 국회에서 이를 명분화할 경우 국내적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는 6월4일은 천안문사태 30주년이 되는 때입니다. 이런 날을 앞두고 굴욕적인 합의를 할 경우 반정부 시위가 발발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도광양회' 대신에 '중국몽'을 꺼내든 시 주석 때문이라는 내부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지요. 지난 10일 협상을 끝낸 류허 부총리는 협상 후 이례적으로 중국 언론들과 만나 “중대한 원칙 문제에선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어느 나라든 자신의 존엄성이 있고 합의문은 균형적이어야 한다”며 ‘국가 존엄’까지 거론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법률을 뜯어고쳐 7개 요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걸 언급한 겁니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 수용할 수 없는 법제화를 강력히 밀어붙이는 걸 놓고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먼저 트럼프의 중국 몰이해설입니다. 트럼프가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과 동양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죠.
두번째는 중국의 체면 중시 문화를 알면서도 일부로 밀어붙인다는 시각입니다.우선적으로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이를 통해 중국의 공산당 통치 혹은 시진핑 주석까지 뒤흔들겠다는 심산일 수 있습니다. 즉 공산당 치하의 중국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깔려있다는 겁니다.
지난 26일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스티브 배넌은 헤지펀드 헤이먼캐피털의 카일 배스와 함께 CNBC방송에 나와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과는 공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중국과 진정으로 대결을 하고 있는 최초의 미국 정부인데, 월가와 미국 기업들은 ‘중국과 합의하라’며 중국측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미국내 전반적 기류가 이렇습니다. 트럼프가 지난 5일 관세 부과 트윗을 날리자, 가장 큰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까지 관세 인상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지요. 중국과 합의하지 않는 게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더 유리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초음속미사일까지 개발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중국을 박살낸 트럼프가 더 인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만약 두번째 설이 맞다면 이번 무역갈등은 당초 기대처럼 단기에 금방 해결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악시오스는 이날 "미·중 양측간 간극이 엄청나기 때문에 연말 전에 이 싸움이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침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약간의 사소한 다툼(a little squabble)이 있다"며 "(무역합의는) 틀림없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이날 미 증시는 낙관적 기대가 퍼지면서 다우 지수는 0.82% 상승했고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0.80%, 나스닥 지수는 1.14% 올랐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멘트는 월요일 폭락한 증시를 다독이기 위한 서비스용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