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가 국내 주류 시장의 과반을 넘기면서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꼽으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소주를 떠올린다. 1920년대 들어 처음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소주공장이 생겼고 맥주, 위스키보다 가격이 저렴해 '서민의 술'이라는 대명사가 붙었기 때문이다.
소주는 제조 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군소 브랜드가 많다. 하지만 점유율과 인지도만 놓고 봤을 때 국내 소주 시장을 양분하는 것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다. 두 브랜드의 국내 소주 시장 도합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 18년 연속 세계 증류주 판매 1위 '참이슬'
1998년 10월 첫 출시된 참이슬은 당시 소주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출시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국내 소주 부문 판매 1위 자리를 지키는 것은 물론 누적 판매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8년부터 지난해 9월 30일까지 총 301억병이 넘는 소주를 판매했다. 301억병은 국내 성인 기준으로(20세 이상·4204만명 기준) 1인당 총 716병을 마신 양이다. 소주병을 일자로 눕혀 길이를 측정하면 서울, 부산 구간을 약 7560회 왕복할 수 있고 지구를 161회 돌 수 있는 거리다.
참이슬은 출시 2년 만에 단일 브랜드로 전국 시장의 5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월평균 1억3000만병 이상이 판매된다. 시장 변화와 소비자 입맛에 부응하기 위해 9차례에 걸친 제품 리뉴얼이 점유율 증가의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특유의 깔끔한 맛을 강조하기 위해 대나무 숯 여과공법으로 잡미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특히 대나무 활성숯이 숙취원인물질과 이취 제거에 우수하다는 사실이 한국산업식품공학회지 연구논문을 통해서도 입증됐고 '죽탄과 죽탄수를 이용한 주류의 제조방법'으로 기술특허까지 취득해 제조방법상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참이슬이 시장점유율을 대폭 늘릴 수 있었던 비결도 대나무 숯 여과공법으로 인해 숙취가 없는 깨끗한 술 맛을 구현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4월에는 저도화를 선호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게 알코올 도수를 17.2도로 적용해 출시했다. 이렇듯 제조공법과 도수 변화를 통해 음용감을 개선하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이 롱런의 비결이다.
참이슬이 얻은 타이틀도 많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국가고객만족지수(NCSI)에서 13년간 소주 부문 1위에 선정됐으며 브랜드스탁이 선정한 브랜드가치 평가지수(BSTI)에서는 9년 연속(2003~2011년) 주류부문 1위에 올랐다. 영국의 주류전문지인 '드링크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참이슬은 위스키, 보드카, 럼, 진 등의 판매량을 훨씬 앞질러 2001년부터 전 세계 증류주(Distilled Spirits) 판매량 18년 연속 1위를 기록해오고 있다.
◆ 낮은 도수로 승부수 띄운 '처음처럼'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롯데주류의 전신은 1926년 만들어진 강릉합동주조다. 강릉합동주조는 1971년 동해합동주조로 상호를 변경했고 1973년 경월주조, 1991년에는 경월로 상호를 재변경했다. 1993년 11월 두산그룹의 계열사가 된 후 1994년 '그린소주'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국내 소주업계 2위에 올랐다. 이후 1998년 9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으로 두산주류BG에 편입됐고 2009년 두산그룹의 주류사업 매각으로 지금의 롯데주류가 됐다.
처음처럼은 2006년 2월 두산주류BG 시절에 만들어졌다. 참이슬이 독주하던 소주시장에 '세계최초 알칼리 환원수'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물을 바꾸기로 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두산주류BG는 치열한 물 연구를 통해 약알칼리성일 때 물분자가 치밀한 육각수에 가까워진다는 점을 발견했고 항산화 기능을 강조한 알칼리 환원수를 제조용수로 선택했다.
처음처럼의 이같은 승부수는 시장에서 통했다. 두산주류BG는 처음처럼이 경쟁브랜드에 비해 부드럽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전략은 당시 막 생겨난 웰빙 트렌드에 맞아 떨어졌다. 처음처럼은 출시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억병을 돌파했고 1년 만에 전국 소주 시장점유율 13.7%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점유율을 24.4%, 수도권에서는 31.1%까지 끌어올렸다. 소주는 소비자들이 좀처럼 먹던 것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점유율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2007년 처음처럼은 다시 한 번 모험을 감행했다. 종전의 20도 일색이던 알코올 도수를 19.5도로 낮추 것. 시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경쟁업체들도 잇달아 '19.5도 소주'를 내놨고 낮은 도수 경쟁이 본격화됐다.
2014년 2월에는 부드러움을 더 강조하고자 도수를 1도 낮춘 '18도 처음처럼'을 출시해 '19도 벽'을 깼다. 같은 해 12월에는 '17.5도 처음처럼'을 선보이며 국내 소주시장의 판을 흔들었고 최근 저도화되고 있는 주류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알코올 도수를 17.5도에서 17도까지 내린 소주도 선보이고 있다.
처음처럼은 2009년 국내 최대 유통망을 갖춘 롯데그룹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롯데의 숙원인 주류사업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롯데주류는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면서 '처음처럼의 전국화' 실현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도 들어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폭'이 유행하면서 처음처럼의 약진에 도움이 됐다. 오비맥주의 '카스'와 처음처럼을 섞은 '카스처럼'이 회식자리마다 연거푸 제조됐고 여성이나 소주를 어려워 하는 소비자들이 처음처럼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브랜드명을 손혜원 의원이 모두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손 의원은 소주를 냉각할 때 병에 이슬이 맺히는 걸 보고 참이슬을 생각했고 회사명인 진로(眞露)의 뜻과도 잘 맞았다. 이 때문에 발매 초기 상품명은 참진이슬로(참眞이슬露)였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에세이집 '처음처럼'에서 가져왔다. 신 교수의 서예작품명과 서체가 그대로 사용된 '처음처럼'은 언제나 새 날을 맞이하듯 초심을 잊지 말자는 마음을 소주 한 잔에 담아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 소주 시장 70%를 차지하는 참이슬과 처음처럼. 고된 업무 후 퇴근길 회식 자리에서 어떤 소주를 드시겠습니까? 홈페이지에서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 뉴스폴 11784 ]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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