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이끌며 경제 살리기와 노사관계 회복에 힘을 썼던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경총은 “경제 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조기에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한 김창성 전 회장이 별세했다”며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이날 밝혔다.
1932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김 명예회장은 경기고,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방직업체 중 하나인 전방(옛 전남방직) 창업주 김용주 전 회장의 아들이다. 동생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다.
전방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가네보방적으로 출발한 뒤 1945년 광복 이후 정부 소유 전남방직공사로 이름을 바꿨다. 1953년 전남방직으로 민영화된 후 1970년 현재 상호로 사명을 바꿨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91년부터 전방을 이끌던 그는 1997년 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7년간 제3대 경총 회장을 지냈다. 경총 창립을 주도한 아버지 김 전 회장도 1970년부터 1982년까지 경총 초대 회장을 지냈다. 대를 이어 경총 회장을 지낸 것은 이들 부자가 유일하다. 경총 1호 가입 기업도 전방이다. 이 때문에 전방은 경총의 상징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김 명예회장이 경총 회장을 맡은 시기는 외환위기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때다. 그는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외환위기 여파로 대립으로 치닫던 노사관계를 완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97년 노동법 개정안을 큰 부작용 없이 정착시켰고,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에 사측 대표로 서명했다.
경총에 ‘법정관리인 기본교육과정’을 개설해 당시 부도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을 돕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모두 섬유업체 회장이 맡던 시기였다. 김 명예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았던 고(故) 김각중 경방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김상하 삼양그룹 그룹회장과 함께 ‘재계의 3김(金)’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경총 회장 퇴임 직전까지도 경제 위기로 줄어든 일자리 회복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2004년 일자리 회복을 위한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 체결에도 큰 힘을 보탰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대한방직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섬유업계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빈소는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자녀 김미사·김수영·김미영 씨, 사위 서창록·김정민 씨 등이 있다. 발인은 17일 오전 6시45분, 장지는 천주교용인공원묘지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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