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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목회자 꿈꾸다 경영의 길로…에너지산업 최전선에 서다

입력: 2018- 11- 03- 오전 03:10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목회자 꿈꾸다 경영의 길로…에너지산업 최전선에 서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66)을 만난 사람들은 대기업 총수보다 교수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온화한 성품과 말투뿐만 아니라 법학 경영학 신학 등 석사 학위를 3개나 보유한 그의 지식의 폭과 깊이에 매료돼서다. 본인도 기업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학자나 목회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의 모습은 ‘승부사’로 바뀐다. 경제·안보와 직결된 에너지 사업은 매일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영 환경 속에서 김 회장은 이순신 장군을 ‘등대’로 삼고 있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이순신 장군이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바다로 나섰듯 그도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매일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고 있다.

최근 서울 관훈동 대성그룹 사옥 근처에 있는 한식당 ‘꽃, 밥에 피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전통 한정식집과 달리 친환경 재료로 밝은 색감을 강조하는 캐주얼한 식당이다. 그는 직원들 소개로 이곳을 처음 방문한 뒤 마음에 들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찾는다고 했다.

◆과학자 꿈꾸던 소년

아담한 느낌의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수프와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전채요리로 나왔다. 평소 국궁으로 심신을 단련한다는 김 회장은 “요즘 체중을 줄이기 위해 채소를 많이 먹는다”며 “이곳 음식은 인사동 거리에서도 정갈하기로 소문났다”고 귀띔했다.

그는 1952년 대구에서 국내 굴지의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한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남매 중 4명이 서울대를 졸업할 정도로 수재(秀才) 집안이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한 천재 로켓 과학자 폰 브라운 박사의 영향을 받았다. 열 살도 되지 않은 무렵 아버지에게 “해와 달은 내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면 법대에 가야 한다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따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981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과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김 회장은 3년 뒤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국제경제에 관심이 있어 당시 하버드 최연소 교수이던 제프리 삭스의 수업을 신청했다. 그러나 곧바로 수학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또래보다 수학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겐 큰 난관이었다.

“경제학은 대학 때 부전공을 해서 익숙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선 개념 중심으로 배웠는데, 미국에 가 보니 온통 수학이더라고요. 공식을 그리다시피 하며 공부해서 학기 말 시험에서 200점 만점에 195점으로 1등을 했어요. 2등과 20점 차이가 나 학교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김 회장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누나(김정주 대성홀딩스 부회장)의 영향으로 신학대학원에도 입학했다. 한글 성경을 읽다가 답답함을 느낀 그는 영어 성경을 찾았다. 그래도 갈증이 풀리지 않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까지 배웠다. “하루에 한 줄은 읽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지금도 원서로 된 성경을 읽는다.

◆전도사로 활동하다 경영 합류

대화가 무르익을 때 보자기 비빔밥이 나왔다. 자연농법으로 농사지은 현미밥에 색색의 재료를 얹은 뒤 유정란으로 부친 달걀 지단으로 보자기처럼 감쌌다. 무염산 김으로 띠를 두르고 꽃으로 장식한 이 식당의 대표 음식이다. 지단을 잘라 속을 열면 갖은 나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참기름과 들기름이 섞인 비빔기름과 약고추장을 덜어 비비면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이 완성된다. 김 회장은 비빔밥을 맛있게 비벼 한술 뜬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김 회장은 하버드대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전도사로 활동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었지만 1988년 갑자기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가 연세가 들어 기업 경영이 점점 힘들어지자 저를 불러들였어요. 목회 활동을 접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업 활동도 성직’이라는 아버지 말씀에 공감했어요. 기업인이라는 위치에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경영학석사(MBA)를 딴 뒤 씨티은행에서 워크아웃 매니저로 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회장은 경영 활동에 열중하다 40대 후반에 오십견을 앓았다. 온갖 수를 써도 낫지 않아 고생하던 중 한 지인이 국궁을 권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한두 달 활을 쏘자 어깨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국궁에서 건강뿐만 아니라 경영의 지혜까지 얻었다고 했다. 국궁에선 활쏘기를 발디딤, 몸가짐, 살먹이기, 들어올리기, 밀며 당기기, 만작, 발시, 잔신 등 여덟 단계로 나눈다. 이 중에서도 활시위를 끝까지 잡아당기는 만작이 가장 중요하다. ‘일할 때도 만작처럼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김 회장은 국궁에서 얻은 지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울 사직동에 있는 국궁장인 황학정을 자주 찾는다. 외출이 여의치 않으면 사무실에서 고무활로 과녁을 겨누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는 “요즘은 화살 같은 돌파력을 지닌 인재를 찾기 어렵다”며 “신입사원 최종 면접에선 지원자들의 열정을 유심히 확인한다”고 했다.

◆국가와 민족 사랑한 이순신 가장 존경

식사가 한창일 때 김 회장이 작은 상자를 꺼내보였다. 그는 회사에 중요한 외국 손님이 찾아오면 금빛 거북선 모형을 선물한다. 외국인에게 한반도 역사를 설명하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이야기를 가장 흥미로워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에게 이순신 장군은 인생의 스승이나 다름없다. 어릴 적 접한 영화 ‘성웅 이순신’과 이충무공전서가 영향을 끼쳤다.

2002년 대성그룹에 편입된 대성창업투자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성창투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김 회장은 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영화 ‘명량’은 역대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며 대박을 쳤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 후속작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김 회장은 몇 년 전부터 경남 남해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의 땅을 매입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승전지에 ‘이순신 테마파크’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는 학생들이 테마파크에서 거북선을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장군의 호연지기를 배웠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 동양전략연구소, 해양미생물연구소를 함께 지을 계획이다.

김 회장은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는 까닭을 ‘진실함’에서 찾았다. 왕이 알아주지 않아도 충성했고, 부모에 대한 효심도 깊었다. 요즘 세상에선 이런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서 더 그렇다. 김 회장은 “기술에 관심이 없던 환경에서 최종병기인 거북선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장군이 지금 계신다면 과학기술을 크게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김 회장의 DNA는 자녀에게도 전해졌다. 김 회장의 맏딸은 소설 다섯 권을 펴낸 작가다.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김 회장은 딸이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원천인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미생물로 에너지 문제 해법 찾아

비빔밥을 다 비운 뒤 김 회장이 에너지 이야기를 꺼냈다. 대성그룹은 지난 6월 부친의 아호(해강)를 딴 대성해강미생물포럼을 열었다. 에너지기업과 미생물은 언뜻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김 회장에게는 유망 사업 분야다. 대성그룹은 미생물을 활용한 폐기물 자원화로 미래 환경과 에너지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천연가스를 액화해 수송하고 다시 기화해 가정에 공급하려면 인프라 비용이 높지만 쓰레기와 미생물을 결합하는 사업은 전망이 좋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북한을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남·북·러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사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남북 해빙무드로 실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대북 경제제재 상황에선 국제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김 회장은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세계에너지협의회(WEC)가 이를 실무적으로 논의하기 좋은 자리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중국 러시아에 경제적 이익을 제시하면 아주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며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같은 모델이 아시아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시간 가까운 식사를 마친 김 회장에게 탈(脫)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어느 한쪽의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적정한 에너지 믹스를 만들기 위해 합리적·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정치 논리에 앞서 국익과 공익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밥, 나물, 고추장, 참기름 등 무엇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맛을 해치는 음식이 비빔밥이다. 김 회장이 식사 메뉴로 단순히 비빔밥을 고른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력

△1952년 대구 출생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1년 미국 미시간대 법학·경영학 석사

△1987년 미국 하버드대 신학 석사

△1997년 대성그룹 본부 기획조정실장 부사장, 대성산업 대표이사 사장

△2000년~ 대성그룹 회장

△2016년~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

■대성그룹은…

종합 에너지기업인 대성그룹은 고(故) 해강 김수근 회장이 1947년 설립한 대성산업공사가 모태다. 연탄을 시작으로 도시가스, 석유, 태양광, 태양열, 풍력, 구역형 집단에너지, 폐기물 자원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70여 년간 에너지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했다. 주요 계열사로는 대구와 경북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대성에너지와 대성청정에너지가 있다. 2000년 김영훈 회장이 취임하면서 제2의 창업을 선포한 이후 에너지 사업 외에도 대성창업투자, 포털사이트 코리아닷컴, (주)대성 등의 계열사를 중심으로 금융, 문화콘텐츠, 교육, 출판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김영훈 회장의 단골집 꽃, 밥에 피다

국산 유기농 '친환경 밥상'…'빕 구르망' 2년 연속 선정

친환경 학교급식 식품을 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 네니아가 운영하는 퓨전 레스토랑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친환경 밥상을 차리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학생들을 위한 식품을 제조하다 일반 소비자에게 ‘좋은 재료로 조리한 먹거리가 맛도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015년 12월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열었다.

최대한 국내산 유기농, 무농약 원료를 사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시판 소스 대신 전통적인 자연 발효 방식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으로 맛을 낸다. 쌀은 전남 장성에서 재배한 백진주 품종의 유기농 현미를 가져다 쓴다. 보자기 비빔밥이나 제육덮밥, 황태만둣국을 먹을 수 있는 점심 세트메뉴는 1만5000~1만8000원이며, 저녁 코스메뉴는 2만9000~5만5000원이다.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의 2018년, 2019년 판에 2년 연속 선정됐다. 빕 구르망은 미쉐린 가이드의 별은 없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1인분 3만5000원대)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뜻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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