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바이든 행정부 경계령이 내려졌다.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이 지나치게 제3국의 반도체 인프라를 흡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장 TSMC (NYSE:TSM) 창업주는 지난 26일 대만에서 열린 포럼을 통해 인텔의 겔 싱어 CEO를 강하게 비판했다. 겔 싱어를 두고 "무례한 자"라고 칭하며 "TSMC에 엄청난 결례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TSMC는 전통적으로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과 긴밀하게 협조한 바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벌어졌던 1차 미중 패권전쟁 당시에도 상당기간 화웨이와의 협력을 강조할 정도였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트럼프 전 행정부 말기인 2020년 하반기다. 미국의 강력한 구애에 결국 TSMC는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으며 미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전선에 전격적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집권에 이르기까지 미국 반도체 전략의 핵심 전력으로 활동하는 한편, 미국의 동맹인 일본 소니와 손을 잡고 현지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하는 등 철저히 미국에 돌아선 행보를 이어왔다.
중국보다는 미국, 특히 미국의 다양한 팹리스 업체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린 전략적 판단이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또 달라지고 있다. 미 상원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520억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업계에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인텔을 중심으로 하는 현지 업체들이 대만 TSMC 등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뉴시스
특히 보조금 지급에 있어 겔 싱어 CEO가 언론 기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TSMC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도 최근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건설하기 위해 손을 잡은 TSMC 등 제3국 반도체 기업보다는 IDM 2.0을 선언한 인텔에 더 기우는 분위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비록 인텔의 파운드리 전략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TSMC와 같은 제3국 기업보다 자국 기업인 인텔에 더 많은 지원을 할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TSMC는 입장에서는 초조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을 버리고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며 현지에 공장을 건설하면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약속을 믿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미묘하게 돌아가는 점은 그 자체로 리스크다.
모리스 장 TSMC 창업주가 공개적인 포럼에서 겔 싱어 인텔 CEO를 비판하는 한편 "이런 상태라면 1,000억달러가 있어도 미국 반도체 전략이 실패할 것"이라고 날을 세운 이유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에 참여한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민감한 기밀을 제출하라고 주문해 논란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 9월 백악관 반도체 회동 당시만해도 각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들에게 '적절한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회동이 종료된 후 바이든 행정부가 상무부를 통해 모든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계획 및 기술유출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설문조사의 형태로 요구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제3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가진 알짜정보를 빼내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TSMC는 물론 삼성전자 (KS:005930)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게도 심각한 위협이다. 미중 패권전쟁 상황에서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만드는 한편, 이 과정에서 동맹을 넘어 '하수인'을 키우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야욕이 선명해진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는 '바이든 행정부 경계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 경계령의 범위가 반도체를 넘어 배터리 등 전략안보물자의 범위에 들어가는 원자재 전체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특허권 분쟁을 해결할 당시에도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다.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배터리는 인센티브도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트럼프 전 행정부를 능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거침없는 돌발행동에 대중국 포위전선에 함께 뛰어든 제3국 기업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