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로 우수 특허를 내고 관련 매출을 올리면 법인세를 깎아주는 ‘특허박스’가 이르면 올해 도입된다. 유럽연합(EU) 각국이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도입한 제도다. 특허청은 특허박스 도입을 골자로 한 2021년 업무계획을 11일 발표했다. ○특허박스, 정교하게 설계 필요특허박스는 특허, 저작권, 상표권, 디자인권 등 지식재산(IP)을 사업화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줄여주는 제도다. 특허 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매출, 로열티, 처분(매각)수익 등이 IP 사업화 소득에 해당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특허박스 도입 요청이 증가하고 있고 해외에서도 시행이 정착돼 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 EU 회원국과 영국 중국 등 총 15개국에서 특허박스를 시행하고 있다. 주먹구구식 R&D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R&D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허박스 도입은 기획재정부 소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사항이다. 특허청은 다음달 말 기재부에 법 개정을 정식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특허박스로 법인세율 25%를 5%까지 최대 80% 낮춰준다. 정부가 지정한 R&D에 한해서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33.3%, 20%인 법인세율을 17.1%, 10%까지 감면한다. 2011~2015년 EU 24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보면 특허박스를 도입한 8개국(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은 연평균 투자액 증가율이 10.8%에 달했다. 반면 미도입국 16개국은 -8%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등을 토대로 산출한 혁신지수(EU 평균 100 기준)는 2016년 기준 도입 8개국이 109.5였으나, 미도입 28개국은 74.3에 그쳤다.
특허박스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R&D 세액공제와 중복 가능성이 큰 데다 악의적 조세 회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특허 기반 매출 상승이 세수 감소분을 보전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재, 부품, 장비 등 일부 산업에서 제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특허전담관 신설해 R&D 사업 투입특허청은 대형 R&D 사업에서 IP 취득 및 소송 전략을 총괄할 ‘특허전담관(CPO)’을 신설해 관계부처에 파견할 방침이다. 올해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에 5년 임기 CPO를 1명 파견하기로 했다.
IP 금융, IP 빅데이터 분석 등에 특화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전담 기관으로 충북대 경상대 전남대 세 곳을 새로 지정한다. 또 IP 담보대출 취급 은행 범위를 국책은행과 대형은행 위주에서 지방은행까지 확대하고, 500억원 규모 IP 투자펀드를 신규 조성할 방침이다.
특허 침해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원고 측 전문가가 피고 공장 등을 방문해 증거 수집을 하는 ‘디스커버리(본 재판 전 증거조사)’ 제도 도입도 검토한다. 미국과 영국이 채택 중인 제도다. 그러나 반도체업계 등에서 “해외 업체에 영업비밀을 갖다 바치는 꼴”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허청 관계자는 “원고가 침해 가능성과 조사 필요성을 상세히 소명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야만 조사할 수 있다”며 “기업 의견을 폭넓게 듣고 제도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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