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관련없는 부상·질병으로 소득이 줄어든 경우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노총 주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건강보험료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졌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제시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도입되더라도 당장 건강보험료율은 법정 최고 한도인 8%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면 산재보험이 적용돼 치료비와 함께 소득 감소분도 받는다. 반면 업무 외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부상이나 질병의 경우는 문제가 된다. 치료비야 건강보험으로 보호를 받는다지만 줄어든 소득은 보장받을 방법이 없다. 아파도 생계 걱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거나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병수당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힘을 받는 가운데 최근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이 제도 도입에 속도를 붙였다.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노동존중실천단 2호 법안으로 건강보험법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1호 법안은 각계의 반대에도 연초에 국회통과를 밀어붙인 중대재해처벌법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 대타협에서 상병수당 도입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문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최종 합의는 불발됐지만, 상병수당 도입은 지난해 7월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도 포함됐다. 최소 수준 도입해도 건보료 법정한도 초과해올해 연구용역을 거쳐 2022년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일정을 못 박았다. 제도를 도입하기까지 상당한 준비 기간이 있을 걸로 예상됐지만, 이번 한국노총·민주당의 발표로 상황이 바뀌었다. 건강보험법 개정부터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건강보험료는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9년 제시한 바에 따르면 연간 최소 8055억원에서 최대 1조7718억원이 제도 운영에 소요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2조8000억원까지 늘어나다. 가뜩이나 정부가 추진해 온 의료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건보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상병수당이 최소 수준인 8055억원만 반영돼도 올해 건강보험료율 6.86%에서 당장 8.16%가 돼야 한다고 경총 사회정책팀은 분석했다. 5년 후인 2026년에는 9.55%로 10%에 육박한다. 최대 수준인 1조7718억원이 반영되면 5년 후 11.39%가 된다.
건강보험료율은 지난 2013년 이후 동결되거나 2% 미만 수준으로 인상됐지만,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매년 3.2% 수준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병수당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5년 후면 건보료율은 법정 상한선인 8%를 넘는다.
건강보험료 부담 주체인 국민과 기업의 동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제도 도입의 필요성만 강조한다. OECD 회원국 중에 한국,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만 제외하면 32개국이 상병수당을 이미 오래전에 도입했다는 얘기다. 1884년 상병수당을 도입한 독일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 상병수당을 놓고 개혁이 추진되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가 2020년 펴낸 정책보고서는 유럽 각국이 추진하는 개혁 방향의 공통 요소를 잘 정리하고 있다. ▲급여 기간 단축 ▲소득대체율 인하 ▲조기 업무 복귀율 제고 등이다. ‘근로 의욕 저하’와 ‘낮은 직장 복귀율’ 등의 문제가 배경에 있다.
재원 조달 방안뿐만 아니라 지급 대상, 지급 기준 등 상병수당을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둘이 아니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제도 설계를 위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때지 속도를 낼 때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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