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 한 전통시장 청년몰에서 1년 가까이 돈가스집을 운영하던 30대 A씨는 2018년 말 폐업한 뒤 수천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창업 초기엔 장사가 그럭저럭 됐지만 두 달여가 지나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각종 비용 부담으로 이윤이 남지 않자 저렴한 식자재를 쓰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급기야 연 20%가 넘는 고금리 일수 대출까지 쓰면서 그는 빚의 굴레에 빠졌다. 전통시장 관계자는 “정부 지원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문을 닫는 청년상인이 늘면서 청년 점포 20곳이 모여 조성된 청년몰 자체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통시장 내 청년몰 조성과 청년상인 입점 사업에 3년간 454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전체 지원 점포 594개 가운데 41%인 245개가 휴·폐업 등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경험 및 성공 가능성 등을 엄격히 따져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예산을 지원한 데다 창업 교육에도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청년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54억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통시장 내 35개 청년몰을 조성하고 594개 점포를 입점시켰다. 이 가운데 지난 8월 말 현재 245개가 문을 닫아 청년상인의 생존율은 59%에 그쳤다. 휴·폐업 점포 중 65%인 160개가 음식점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선 이화여대 앞 스타트업 상점가 내 음식점, 공방 등 13개 점포가 폐업했다. 부산에선 국제시장 내 돈가스, 만두전문점, 커피숍 등 14개, 서면시장 내에선 6개 점포가 영업을 그만뒀다. 경기 수원 영동시장, 경북 구미 선산봉황시장과 경주 북부상가시장, 전남 여수시장 등에서도 청년상인들의 폐업이 속출했다. 수도권 청년몰에서 음식점을 하는 한 점주는 “신메뉴 개발을 포기하고 손님도 끊겨 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청년상인도 상당하다”며 “폐업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 폐업한 거나 마찬가지인 점포도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고 전통시장도 살리자는 취지에서 2016년부터 청년몰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전통시장 내 일정 구역에 만 19~39세 청년 점포 20곳 이상을 입점시키는 사업이다. 전통시장 내 빈 공간을 청년들에게 임대해 장사 길을 열어주는 ‘청년상인’ 사업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이들 청년 가게에는 임차료로 3.3㎡당 월 11만원씩 24개월까지 지원한다. 점포 운영 기반 조성에 최대 300만원, 3.3㎡당 100만원 한도의 인테리어 비용 등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임차료 등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는 점포부터 문을 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년상인 지원 사업이 선발부터 후속 관리까지 졸속으로 운영되고, 제대로 된 상권 분석 없이 실적 채우기 식으로 이뤄지면서 휴·폐업이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 초기 청년상인 선발을 개별 시장의 청년사업단에 일임하고, 신청 서류와 한 차례 면접만으로 입점 점포를 뽑은 것도 패착으로 꼽힌다.
정부는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부터 신규 점포 개설 지원은 가급적 지양하고 청년상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올해 청년몰은 4개만 조성하고, 점포 입점은 70개만 골라 지원하기로 했다. 작년 실적(청년몰 9개 조성, 135개 점포 입점 지원)의 절반 수준이다. 실패율이 높은 단순생계형 업종은 피하고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 중심 전문몰 형태의 ‘혁신형 청년몰’을 조성하기로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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