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세금 수입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예산실과 함께 나라 살림을 이끄는 양대 축이다. 합리적인 세금 제도를 설계해 세수를 확충하는 게 본연의 업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세제실의 ‘씀씀이’가 난데없이 커졌다. 세금을 깎아주는 조세 감면 규모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세수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할 세제실이 정치권에 휘둘리면서 국가 재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조세감면액은 47조4000억원으로 작년(41조9000억원)보다 13.1%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기간 국가예산은 428조8000억원에서 469조6000억원으로 9.5% 증가했다. 조세감면액 증가율이 예산 증가율을 압도한 셈이다. 2016년 감면액이 37조4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10조원이나 증가했다. 내년 조세감면액은 51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감면액이 급증한 데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근로장려금(EITC)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큰 폭으로 늘린 영향이 컸다. EITC 총 지급액은 작년 1조3000억원에서 올해 4조9000억원으로 네 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EITC는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와 사업자(전문직 제외) 등에게 지급하는 근로연계형 지원금이다. 세금 환급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도 받을 수 있어 ‘현금 지급 복지’로 불린다.
조세감면은 예산 지출보다 국회와 언론의 감시를 덜 받는다. 정부도 이 점을 이용해 반대 목소리가 높은 정책을 예산 대신 조세감면을 통해 추진할 때가 많다. 세제실 역시 청와대와 정치권 앞에서 무력해지기 일쑤다. 지난 7월 청와대가 내년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무산된 것을 사과하며 “EITC 지급 규모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 사례다. 기재부와 사전 상의 없이 나온 이 발언은 10여 일 뒤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조세감면 규모는 위험 수위를 넘어 국가재정법에서 지정한 한도를 2년 연속 초과할 기세다. 기재부는 올해와 내년 국세감면액과 국세수입 총액을 더한 금액에서 국세감면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국세감면율을 각각 14.5%, 15.1%로 법정한도(14.0%)를 2년 연속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감면율이 법정한도를 초과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과 2009년 외엔 없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으로 정해진 한도를 넘어서까지 국세감면을 늘리는 건 후세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국가 재정이 악화일로를 걷지 않으려면 세제실이 중심을 잡고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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