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동 기자 = # 임기성 씨는 지난해 5월 병원을 찾았다가 갑상선에 있는 종양을 발견했다. 고열로 종양을 태워 제거하는 고주파수술을 받았다. 과거 메스로 절제하는 것보다 간단하고 재발 가능성도 낮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수술 후 보험금을 청구할 때 발생했다. 보험사가 고주파수술은 약관에서 정의한 ‘수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이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반드시 가입한 보험에서 수술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술보험금을 받으려면 보험사가 약관에서 정의한 ‘수술’의 요건에 해당해야 한다. 임씨가 받은 고주파수술은 보험사 약관상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 보험사가 표준약관에서 정의한 수술은 의사가 치료에 필요하다고 인정, 치료를 위한 '기구'를 사용해 생체를 '절단, 절제 등의 조작'을 한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칼로 피부를 절개한 후 피부 밑 생체 조직을 자르거나 도려낸 것만 보험사는 '수술'로 인정한다. 그런데 고주파수술은 종양 내부에 1㎜ 굵기의 바늘을 삽입,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전류를 이용해 바늘 끝에 마찰열을 발생시킨다. 이 열을 통해 바늘 주변의 종양을 태워 괴사시키는 방식이다.
보험 약관에서 정의한 수술과 달리 피부를 절개하지도 않았고, 생체를 자르거나 절제하지도 않았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피부에 흉터도 남지 않고 치료법도 간단한 고주파수술을 권하는 게 당연하다. 환자도 전통적인 수술보다 부작용도 적고 아프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보험사는 문제가 없다. 수술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은 약관에 보상하기로 약속한 것만 지급하면 문제가 없는 열거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십 년간 유지하면서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전통적인 수술과 달리 최근엔 약관에서 정의하는 것 외의 방식으로 수술을 하기 때문. 그렇다면 진짜 보험금을 전혀 받을 수 없을까?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병원 및 의료기기 산업박람회(K-HOSPITAL FAIR 2019)' 한 부스에서 수술부위감염 방지 특화 수술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9.08.21 mironj19@newspim.com |
고주파수술 관련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고주파수술도 넓은 의미의 수술로 봐야 해 보험계약상 수술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보험사가 아닌 소비자의 편을 들어준 거다. 이에 보험사들은 2014년 4월 표준약관에 대법원의 판결을 반영했다. 약관에 최신 의료 기술이라고 해도 수술에 부합하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거다.
문제는 표준약관에 반영되기 전 계약들이다. 특히 최근 이런 분쟁이 많아졌다. 시장이 포화된 동시에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 등으로 보험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500만원 이내의 수술비 지급도 깐깐하게 심사한다. 이에 대법원이 고주파수술도 수술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해도, 과거 계약한 모든 상품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거다. 문제가 있으면 소송을 진행하자는 식이다.
또 전통적인 수술 방식은 대개 환부를 한 번만 절제한다. 하지만 고주파수술은 종양이 아닌 주변 조직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게는 3회 많게는 5회 이상 반복 수술한다. 고주파수술도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보험사의 부담은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2014년 이전 상품은 가급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거다.
◆ 표준약관 반영 전 상품도 1회 수술비 지급
금감원이 뚜렷한 선을 긋지 못하는 것은 보험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상반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면 보험사의 주장대로 표준약관에 반영되기 전 상품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게 맞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계리적 관점에서 보면 1회는 지급해야 한다. 보험은 통계를 기반으로 상품을 개발한다. 수술보험금도 마찬가지. 즉 상품을 개발할 때 갑상선에 종양이 발견되면 1회 수술비를 지급한다는 통계가 반영돼 있는 것. 이에 법리적으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는 고주파수술이라고 해도 계리적으로 1회 수술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거다.
이 문제에 대해 보험사의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보험사에 가급적 지급을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금감원이 선을 그을 경우 법리적인 관점과 계리적 관점 중 한쪽에 치우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
다만 현실은 1회 이상의 보험금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지급한다. 또 1회 지급하더라도 특수한 경우라고 강조한다. 법리적으로는 보험사의 주장이 틀리지 않으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많이 알려지면 보험사는 그만큼 많은 보험금 지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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