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량로의 새천년주유소는 지난 9월 말 ‘셀프 주유소’로 전환했다.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이 주유소의 이호진 대표는 “직원들을 다 내보내고 몇 달간 셀프 주유기 설치 공사를 했다”며 “18년간 유류 사업을 해왔는데 지금이 최악”이라고 하소연했다. 올 들어 400곳에 가까운 일반 주유소가 문을 닫거나 셀프 주유소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가 급등한 데다 경기 침체 속에서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쟁 심화에 임금 부담까지
18일 한국석유공사의 석유정보 시스템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전국 일반 주유소는 총 8340곳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의 8720곳에서 380곳(4.4%) 감소했다. 일반 주유소는 종업원을 두고 차량주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업소당 평균 4명가량을 고용하고 있다는 게 한국주유소협회 측 설명이다.
2009년 1만 곳을 돌파했던 일반 주유소는 매년 100여 곳씩 감소해왔다. 2016년엔 전국적으로 9000곳 아래로 줄었다. 올 들어선 10개월 남짓한 기간에 400곳 가까이 줄었다. 대부분 폐업하거나 셀프 주유소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폐업 및 전환 건수로는 역대 최다 규모다.
같은 기간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는 셀프 주유소는 오히려 늘어났다. 작년 말 3057곳에서 현재 3215곳으로 158곳 증가했다. 전체 주유소에서 셀프 업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27.8%로, 작년 말 대비 1.8%포인트 증가했다. 그동안 난립했던 주유소 간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급등한 게 결정타였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작년 대비 16.4% 오른 데 이어 내년에도 10.9% 인상될 예정이다. 셀프 주유소 전환을 고려 중인 한 주유소 대표는 “영세 주유소 중에는 월 수익이 300만원도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가 2년 동안 30% 가까이 오르는 걸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내년 5월까지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15% 낮추기로 했지만 주유소 경영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게 일선 주유소 관계자들 설명이다. 한 주유소업체 대표는 “유류세를 낮추면 그만큼 판매 가격도 연동하기 때문에 주유소 경영엔 큰 보탬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심재명 주유소협회 기획팀장은 “정부 조사 결과를 보면 주유소 평균 영업이익률이 1.8%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적자를 보는 곳이 많다”며 “경기 침체에다 인건비 급증으로 주유소업계에선 고용 창출은커녕 기존에 있는 고용조차 지키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폐업·전환비용 1억원” 진퇴양난
셀프 주유소 비중은 서울지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내 셀프 주유소는 총 171곳으로, 서울 전체 주유소(508곳)의 33.7%를 차지했다. 세 곳 중 한 곳이 셀프 주유소란 얘기다. 전국 평균 대비 5.9%포인트 높다.
전문가들은 무인 주유기 가격이 내리면 셀프 주유소 전환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인정산 시스템을 갖춘 셀프 주유기는 대당 3000만원 선으로, 800만원 정도인 일반 주유기보다 4배가량 비싸다. 무인 주유기를 4대만 설치해도 1억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1억원 넘는 폐업비용 역시 한계 상황에 놓인 주유소들을 막다른 길로 모는 요인이다. 석유유통업계 관계자는 “주유소 문을 닫으려면 관할 시·군·구에서 환경 관련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토양 정화비용만 보통 7000만원 넘게 든다”며 “장사가 안 돼 폐업하는 마당에 구조물 철거비까지 합쳐 1억~2억원을 쓰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적자 주유소’ 중 일부는 부지를 헐값에 내놓거나 아예 휴업한 뒤 방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폐업한 주유소가 장기간 방치될 경우 지하수·토양 오염이 심해지거나 폭발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장은 “주유소 기름을 보관하는 탱크 주변은 일단 오염됐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며 “일본처럼 폐업한 주유소에 복구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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