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금융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를 비롯한 사업자들에 대한 감독·제재를 강화한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이용자의 안전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와 동시에 규제 허들을 넘지 못한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는 폐업, 든든한 자본력을 지닌 대형 거래소의 독식 문제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상자산보호법 시행, 은행에 예치금 보관… 규율 체계 도입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상자산거래소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이용자의 예치금을 믿을만한 '은행'에 보관하고 예치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익의 일부를 예치금 이용료(이자)를 이용자에게 지급한다. 가상자산사업자는 국채 등 안전 자산으로만 운용할 수 있다. 사업자 자격 말소 등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또 이용자가 매수한 가상자산을 보호한다. 이를 위해 거래소는 이용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의 80%를 콜드월렛(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분리 지갑)에 별도로 보관한다. 해킹 등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사고에 따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준비금도 적립한다.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율 체계도 도입된다. 거래소는 이상 거래를 상시 감시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의심되면 금융당국에 통보한다.
금융당국의 조사 및 수사기관의 수사를 거쳐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에 상당하는 벌금의 형사처벌, 부당이득 2배에 상당하는 금액 또는 40억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부당이득 규모가 50억원을 넘어가면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금감원은 가상자산사업자를 대상으로 이용자 보호 의무 준수 여부 등을 검사한다. 금융위는 검사 결과에 따라 의무를 위반한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 과태료 부과 등 제재를 할 수 있다.
5대 거래소 이상거래 감지 시스템 구축… 독식 문제 심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대 가상자산거래소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이상거래 감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킹에 대비해 콜드월렛(오프라인 상태의 지갑) 시스템을 구축했다.
5대 가상자산거래소가 모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는 이상거래 상시감시 모범규정과 표준 광고규정을 제정하며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이용자 자산 보호에 초점을 둔 만큼 규제 부담이 커진 셈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과 연계해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원화마켓거래소와 원화 거래가 지원되지 않는 코인마켓거래소로 나뉜다. 원화마켓거래소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5곳이다.
코인마켓거래소는 원화거래를 지원하지 않아 가상자산을 거래하기 위해선 비트코인이나 테더(USDT)를 구매해야 한다. 원화로 투자 시 이중수수료가 부과돼 원화마켓보다 이용자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코인마켓거래소는 실적 개선을 위해 금융당국에 원화마켓거래소 신청을 진행했으나 금융당국 심사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 지난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신고(VASP)를 한 22곳의 코인마켓거래소 중 공식적으로 영업종료 의사를 밝힌 사업자는 ▲캐셔레스트 ▲한빗코 ▲코인빗 ▲오케이비트 ▲프로비트 ▲텐앤텐 ▲후오비코리아 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정치권에선 특정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이 연계 수수료를 독식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신한은행(코빗), NH농협은행(빗썸), 전북은행(고팍스), 케이뱅크(업비트), 카카오뱅크 (KS:323410)(코인원) 등 5곳의 수수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특정 기업의 시장 독점 문제를 지적했다.
업비트는 이달 기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시장 점유율이 60%를 차지한다. 지난해 10월 기준 80%에 달했던 업비트는 점유율이 20%가량 줄었지만 업비트, 빗썸 등 대형 거래소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 고객 가운데 가상자산거래소와 연결계좌를 가진 고객의 비중은 ▲케이뱅크 49.8%▲농협은행 18.51% ▲카카오뱅크 2.99% ▲신한은행 1.28% 순이다.
올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가상자산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한 개 사업자의 점유율이 50%, 셋 이하 사업자의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독과점 지위를 남용하는 것에 대응한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우 점유율 요건을 충족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상자산업권을 사업자로 규제하지 않는다.
민병덕 의원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세계 10위권인데, 특정 기업의 독주가 지속되는 독특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코인 상장 시장, 코인 가격 왜곡, 코인 투자자 보호 미흡, 수수료 인하 위주의 경쟁 등이 우려돼 국정감사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