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지난 2년간 29.1% 오르면서 산업현장과 고용시장에서 아우성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랬던 정부가 21일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 위주로 고용 감소를 불러왔다며 그 부작용을 공식 인정했다.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만원 공약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 데 이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속도 조절’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도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경선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번 실태조사 결과와 현장의 목소리를 참고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첫 인정
고용부는 21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 영향 분석 토론회’를 열고 최저임금 현장실태 파악 결과를 공개했다. 작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공단 내 중소 제조업, 자동차 부품 제조업 등 4개 업종에서 각 20개 안팎 사업체를 집단심층면접(FGI)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를 담당한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는 통계가 아니라 사례조사 방식이어서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취약업종일수록 고용이나 근로시간을 줄여 인건비 부담을 해소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소매업은 다수의 사업장에서 고용을 줄여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고, 고용과 근로시간을 모두 줄여 인건비 부담 충격을 완화한 곳도 상당수 있었다. 주휴수당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이른바 ‘알바 쪼개기’를 한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주휴수당이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줘야 하는 하루분의 추가임금이다. 근무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줄이면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노 교수는 “도·소매업에서는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초단시간 근로화하는 현상도 발견됐다”고 했다.
○임금 불평등 완화됐다지만…
음식·숙박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음식·숙박업에서는 각 사업장이 고용과 근로시간 중 최소 하나는 줄였으며, ‘피크타임’에만 근로자를 고용하는 형태도 다수 확인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통계청 조사에서도 이미 확인된 내용이다. 지난해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각각 7만2000명, 4만5000명 급감했다. 도·소매업 취업자 수는 올해도 계속 감소세다. 올 4월 도·소매업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7만6000명 줄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 간 임금 불평등이 완화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 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작년 6월 기준 19%로, 전년(22.3%)보다 3.3%포인트 떨어졌다”며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20% 아래로 떨어진 것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고용시장 울타리 안의 근로자 임금만을 비교한 것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효과를 설명하려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자영업자 소득, 가계소득도 포함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성수영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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