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D램 가격이 2년4개월 만에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4분기부터 실적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경기 이천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들어보이고 있다. 한경DB
3분기 고점 찍었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콘퍼런스 콜에서 처음으로 반도체업황이 나빠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명진 삼성전자 IR담당 부사장은 “D램값 약세 등 업황 악화 여파로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급 부족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D램 가격은 3분기를 기점으로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DR4 8기가비트(Gb) D램 고정거래 가격은 지난 9월(8.19달러)보다 10.74% 떨어진 7.31달러를 기록했다. D램익스체인지가 2016년 6월 PC용 DDR4 8Gb D램 고정거래 가격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값이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낸드플래시값은 10월에도 6.5% 떨어졌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제기한 반도체 고점 논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가격뿐 아니라 4분기와 내년 1분기 수요도 줄어들 전망이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등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그동안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데이터 센터 투자를 줄이고 있어서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제조업 경기가 둔화되면서 중국 IT 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월 발표된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6.5%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6.4%)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도 판매 대수를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반도체업황 둔화는 계절적 비수기인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AI·5G가 장기 수요 견인”
반도체업계는 내년 2분기를 기점으로 메모리 시황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 2분기 인텔의 신규 중앙처리장치(CPU) 플랫폼 발표를 계기로 고용량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IT 업체들이 내년 상반기에는 서버용 D램 투자를 줄이더라도 하반기에는 다시 늘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중저가 스마트폰에 트리플 카메라와 3차원(3D) 센서 등 고급 기능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는 호재다.
길게 보면 반도체 전망은 더욱 좋다. 일반 서버에 비해 메모리 반도체 탑재량이 50% 이상 많은 AI 서버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5G 이동통신 시대를 맞아 ‘에지 컴퓨팅’(분산된 소형 서버를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 서버 수요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의 추격세가 얼마나 빠르냐에 달렸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대한 담합 조사를 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메모리 반도체 주요 수요처인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가격 인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칼을 빼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3대 토종 메모리 반도체 회사를 위해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푸젠진화와 허페이창신은 D램을, 중국 국유기업인 칭화유니그룹 산하 창장메모리(YMTC)는 낸드 플래시를 각각 내년에 양산한다는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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