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3연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금융권에서 또다시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1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3연임 과정에서 불거진 금감원과 하나금융 간 갈등과 ‘판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청와대 지시로 일단락됐던 1년 전과 달리 이번엔 법률 리스크라는 명분을 내세운 금융당국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금감원, “1년 전과는 상황 달라”
금감원은 지난 26일 차기 하나은행장 후보군을 선정 중인 하나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들과 만나 함 행장의 3연임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하나금융 임추위는 당초 28일 회의를 열고 은행장 후보를 추천하려 했지만 시기를 3월 초로 연기했다.
지난해 1월 하나금융 회장 인선을 앞두고 있던 때도 금감원은 사외이사진과 면담했다. 당시 금감원은 지배구조 검사를 이유로 선임 절차 보류를 권고했으나 이사회가 예정대로 후보자 인터뷰를 강행하자 재차 공문을 보내 회장 선임 일정 연기를 요청했다. 금융권은 김 회장의 3연임을 무산시키기 위해 금감원이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관치 논란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는 뜻을 금융당국에 전달하자 금감원이 회장 선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금감원이 이번에 또 하나금융 인사에 개입하는 것을 두고 내부에서도 우려가 적잖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1년 전과 달리 이번엔 함 행장이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어서 명분이 있다는 게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올초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도 금감원이 함 행장의 법률 리스크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함 행장에 대한 1심 판결은 이르면 올해 말께 나올 전망이다. 만약 3월 중 3연임에 성공한 함 행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최고경영자(CEO)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게 금감원의 지적이다.
야당·금융권, “명백한 인사 개입”
하나금융은 금감원이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는 건 명백한 관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함 행장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함 행장의 법률 리스크에 관한 우려를 전달했으면서도 은행 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금감원의 공식 입장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27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하나은행장 선임의 권한과 책임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있다”면서도 “지배구조 리스크 등에 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감독당국의 기본 소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 이사진을 불러 함 행장의 3연임에 관한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인사 개입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건 금감원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야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은 “금융감독과 인사 개입은 다르다”며 “3월 임시국회 때 금감원장을 상대로 집중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위 소속인 김용태 한국당 의원도 “금감원의 이런 개입은 전형적인 금융권 블랙리스트”라며 “함 행장의 선임 여부는 실적 등을 고루 살펴본 뒤 기업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함 행장은 즉시 행장에서 자진 사퇴하고 임추위도 차기 행장 후보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민/김순신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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