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소재ㆍ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 이덕환 서강대 교수,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곽노성 한양대 교수, 이홍배 동의대 교수. |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곳곳에서 소재의 국산화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완벽한 소재의 국산화는 꿈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12일 전국경제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의 '소재ㆍ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3개 중 하나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탈일본화는 곧 국산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국산화가 아니라 중국산 저순도 불화수소 또는 형석과 황산 수입의 증가를 의미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화수소는 형석에 황산을 반응시켜 만든 '무수불산'을 정제해 만드는데, 무수불산은 중국에서 주로 생산된다"며 "결국 중국에서 형석과 황산을 수입하거나, 중국산 저순도 불화수소를 들여와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원재료를 수입해야 한단 사실에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세계 경제가 자유무역체제에 기반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유무역은 국제적 분업과 협업을 기반으로 한다"며 "반도체 수출을 하겠다면서 소재는 국산화하겠다는 발상은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재 부품의 경쟁력 강화 논의는 이러한 글로벌 무역 구조와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배터리 등 각 산업 분야에서 소재의 국산화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국산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뿐만 아니라 시장성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산화를 할 때 우리나라 기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재는 개발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며 "시장성을 생각해서라도 일본의 소재 산업을 능가해 다른 선진국으로 진입 가능한 소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소재의 국산화는 정부가 주도하기 보다는 온전히 기업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기업 간 거래의 투명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되, 기업들이 기술적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 격차가 사업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정책학과 특임교수는 화학물질 평가 규제 강도가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한국 순으로 한일 간 대비가 극명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곽 교수는 "일본과 미국은 신규물질만 신고하지만 한국 화평법은 기존 물질까지 모두 신고하도록 한다"면서 "법률 측면에서도 일본 화관법은 화학물질 562종을 관리하지만 한국 화관법은 1,940종 이상을 관리하는 등 관리대상이 약 3.5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규제의 주무부처가 환경부인 데 비해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주도적 역할을 하며 지난해 제도 개선을 위해 약 1만4,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연구개발 활성화와 규제 개혁 등 기업환경 개선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국내 연구개발(R&D) 규제가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국내 R&D 투자 공제율을 보면 2013년 14%에서 2017년 9.4%로 하락한 반면 일본에서는 2017년 오히려 R&D에 많이 투자한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추가 부여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주영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