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언제 터질지 모를 빚을 늘리면서 ‘폭탄 돌리기’를 계속해왔는데 앞으로 재정을 더 많이 풀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금은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재정건전성을 확충해도 모자랄 상황입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한국경제학회장·사진)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저성장과 고령화로 향후 재정수요가 급증할 게 뻔한데 정부가 적자국채까지 찍어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으로 513조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43조원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국세수입은 올해보다 2조7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빚으로 예산을 충당할 상황이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7.1%에서 내년 39.8%로 오르게 된다.
정부 재정은 국가가 위기에 대응할 때 쓸 수 있는 ‘실탄(대응 여력)’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한국 경제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재정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이때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GDP 대비 국가채무는 45% 이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 이내 관리’ 원칙을 스스로 깬 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내비쳤다. 이 교수는 “이제까지 정부가 스스로 지켜오던 재정건전성의 방어선을 무너뜨려 앞으로 재정이 더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세 없이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 교수는 “과거 사례를 봐도 대대적인 세제 개편 없이 재정건전성이 나아진 적이 없다”며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재정을 풀었는데 재정건전성이 과연 향상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세금 조달방안 없는 확장적 재정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이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지금 정부 태도는 임기 내에만 재정이 괜찮으면 되니 폭탄 돌리기를 하자는 것”이라며 “복지 수준을 높이는 대신 세금도 올릴지, 현 상황을 유지할지를 공론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오죽하면 기재부 과장 사무관들이 ‘나중에 국가부채 문제가 터지면 우리가 (고위공무원이 됐을 때) 수습해야 한다’는 걱정을 나에게 토로하겠는가”라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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