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산시성 시찰에 나섰다. 당시는 코로나19 책임론이 불거지며 미국과 난타전을 벌이기 일보직전이었다. 시 주석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샤오캉 시대의 비전을 설파하는 한편 현지 농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가 벌어진 것은, 시 주석이 친링(秦嶺)산맥의 시골마을인 진메이촌을 방문했을 때 벌어졌다. 시 주석이 타오바오 생방송 스튜디오를 찾아 현지 특산물 자수이 목이버섯을 라이브 커머스 방식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상에 등장한 시 주석이 목이버섯의 효능을 네티즌들에게 설명하며 판매를 독려하자 24톤에 달한 버섯은 하루만에 모조리 '완판'됐다.
정치적 이벤트다. 코로나19를 맞아 중국'발' 전염병 감염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 주석은 과거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이 농촌지역을 돌며 영향력을 확대했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나아가 시 주석의 행보는 빈곤탈출로 이어지는 샤오캉 시대에 대한 본인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리는 포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이벤트가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핵심 수단으로 라이브 커머스를 점지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대해도 좋다. 시 주석도 관심을 보였던, 라이브 커머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 시진핑 주석이 4월 산시성 시찰에 나서고 있다. 출처=뉴시스 |
1인 크리에이터의 고민
국내서 판도라 및 아프리카TV 별풍선 비즈니스 모델로 대표되던 1인 크리에이터 시장이 '생방송'을 바탕으로 성장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은 개인방송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개인방송은 몇몇 특수한 BJ의 전유물에 불과했으며 아직 대중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발화'는 구글 유튜브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2016년 유튜브가 실시간 스트리밍 개편에 돌입하며 명실상부 동영상 커뮤니티에서 모바일에 특화된 라이브 방송으로 거듭나며 게임의 룰이 변한다. 유튜버의 등장과 함께 1인 크리에이터 시장이 만개하며 본격적인 MCN(다중채널네트워크)의 무대가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며 1인 크리에이터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 1인 크리에이터가 우후죽순 늘어나며 MCN 사업이 탄력을 받던 시기, 업계는 또 한 번 심각한 고민에 직면한다. 수익을 창출할 비즈니스 모델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샌드박스네트워크 등 유명 MCN들이 등장했으나 1인 크리에이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업계는 브랜딩 및 홍보에 방점을 찍어 1인 크리에이터의 스타성에 기반한 콘텐츠 전략으로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SNS에 친화적인 콘텐츠를 의뢰받아 제작하는 브랜디드 콘텐츠 영역으로 쏠리기도 했다.
그 혼란의 중심에 커머스와의 결합을 꾀하는 작업들이 시작됐다. 1인 크리에이터가 MCN의 지원을 받아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 강력한 비즈니스 수단으로 부상하며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왕홍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파트너 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나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만 이러한 인플루언서 중심의 판매 전략은 약점도 많았다. 우선 콘텐츠의 중심이 인플루언서, 즉 1인 크리에이터의 스타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커머스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데다 상품의 결제 인프라 연동이 어렵고, 무엇보다 1인 크리에이터의 순수성이 오해받을 여지도 크다. 이를 우려한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몰래 광고, 즉 뒷광고를 받으며 최근 이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동영상 콘텐츠'를 '라이브'로 지원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커머스가 아닌 1인 크리에이터의 역량에 좌우되며, 이 수준에서 MCN은 자체 결제 인프라 부족 및 팬과의 진심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뜻이다.
▲ 출처=갈무리 |
라이브 커머스, IT 플랫폼과 만나다
1인 크리에이터에서 촉발된 동영상 콘텐츠의 라이브, 즉 실시간 스트리밍의 가능성과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커머스의 결합은 일단 지지부진한 수준이다. 각각의 경쟁력은 확인되지만 그 이상의 한 발은 내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형화된, 그리고 결제 인프라부터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막대한 이용자층을 동원할 수 있는 IT 플랫폼이 등장했다. 이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플랫폼 인프라에 MCN들이 가지지 못한 다양한 지원 시스템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라이브 커머스 시대를 열고 있다.
이미 왕홍을 중심으로 인플루언서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커머스와 결합시켰던 경험이 있고, 방대한 내수시장을 자랑하는 중국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바이트댄스의 틱톡은 물론 타오바오즈보(淘宝直播) 등 다양한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이 등장해 ‘다이훠(带货)’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라이브 커머스의 전제조건이 되어버린 숏폼 콘텐츠를 중심에 두고 커머스 전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2020년에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한 9610억위안(약 167조원)으로 예측된다
반면 국내서는 인플루언서를 중심에 두지 않고, 숏폼 콘텐츠 기반의 플랫폼을 내재화시킨 네이버와 카카오의 전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는 지난 3월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인 셀렉티브를 런칭했고 7월에는 이를 쇼핑 라이브로 명칭을 바꿔 힘있는 라이브 커머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잼라이브까지 인수했다.
▲ 출처=잼라이브 |
주로 판매자들에게 네이버라는 판을 깔아주는 것에 집중하며, 관련 매출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네이버 쇼핑의 판매자를 위한 고도화된 툴에 잼라이브가 가진 다수의 라이브 콘텐츠 제작 경험이 합쳐지면 SME를 위한 보다 다양한 라이브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도 뛰어들었다. 12일 카카오커머스는 카카오쇼핑라이브를 정식 오픈하며, 국내 라이브 커머스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쇼핑 문화 창출에 나선다고 밝혔다. 정식 오픈을 기점으로 방송 주기를 매일 1회 이상으로 잡고 톡채널 및 카카오 쇼핑하기, 카카오 선물하기 등 다양한 연계 서비스와의 시너지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 출처=카카오 |
카카오커머스 관계자는 “카카오쇼핑라이브 시청자와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성장세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 풀을 확대하여 쇼핑의 편의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한편, 중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행사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강력한 기반 IT 플랫폼을 바탕으로 인플루언서가 중심이 아닌, 상품 중심의 커머스 전략을 라이브 커머스로 풀어낸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많은 기업들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까지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하는 패턴이 발견되고 있다.
서울시는 패션쇼와 라이브 커머스를 접목한 ‘서울365 라이브 커머스 패션쇼’를 준비중이며 전북 순창군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들을 돕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 지난 7월 서울시와 현대백화점의 라이브 커머스 콜라보. 출처=서울시 |
코로나 시대의 희망, 혹은 미완의 성과
트럼프 미 행정부가 바이트댄스의 틱톡을 제재할 당시, 월마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했으나 상황이 어려워지자 오라클 컨소시엄에 합류해 기어이 틱톡 글로벌의 지분 일부를 확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프라인 유통의 종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커머스의 핵심이 라이브 커머스에 있음을 자각했고, 그 연장선에서 숏폼 콘텐츠라는 전략을 구사하는 틱톡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라이브 커머스는 모바일 시대와 만나 더 큰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일상적으로, 또 재미있게 상품을 판매하거나 구매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생활밀착형 판매 구매 쇼핑 플랫폼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트렌드가 부상하는 가운데 판매자들이 오프라인 유통 마진을 줄이며 라이브 커머스로 적절한 할인을 통한 서비스 제공에 나설 경우,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윈윈 모델도 만들어진다.
▲ 출처=뉴시스 |
특별한 준비가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이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특히 시각적인 라이브 커머스의 활동성에 착안해 '볼거리' 중심의 전략이 가동된다면 라이브 커머스의 잠재력은 더욱 배가될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비대면 트렌드가 강화되는 가운데 이커머스가 시장을 강타하고, 그 중심에 라이브 커머스가 주역이 될 동기는 충분하다.
라이브 커머스의 확장성은 지금까지 상품 홍보에 있어 소외되어 있던 다양한 판매자들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른바 상생의 이미지를 짜는 것에 용이하다는 뜻이며 이 과정에서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일종의 '덤'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우선 중국처럼 왕홍에 기댄 인플루언서 중심 라이브 커머스는 MCN이 가졌던 '커머스가 주력이 되지 못하는 고민'에 빠질 수 있다. 나아가 일반 SNS 및 IT 플랫폼을 통해 라이브 커머스를 시도할 경우 결제 인프라 미비 등 많은 혼란이 불가피하다.
나아가 TV 홈쇼핑은 규제를 받지만 라이브 커머스의 규제는 일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크다.
▲ 출처=갈무리 |
다행히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라이브 커머스에 특화된 서비스를 일반 IT 플랫폼이 진행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중국도 최근 타오바오 등을 통한 비슷한 활로를 찾고 있으며, 당분간 라이브 커머스의 주도권이 플랫폼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제 실시간 스트리밍, 즉 라이브 방송이 모든 것이 구비된 플랫폼을 타고 커머스 주력으로 손 안의 미디어에 파고들고 있다. 이커머스의 새로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