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4월20일 (로이터) - 수 백만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막고 이들에게 미국 내 취업을 허가하는 내용의 2014년 행정명령을 되살리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이 암초를 만났다.
미 대법원은 18일(현지시간) 의회를 우회한 오바마의 이민 관련 행정명령을 막기 위해 텍사스를 위시한 26개주가 제기한 소송을 심리했다. 진보 보수 대법관 각 4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이들의 성향대로 의견이 양분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 판사 4명은 오바마의 계획을 지지한 반면 보수 4명은 회의를 표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찬반 동수일 경우 지난 해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판시했던 하급 법원의 판결이 유지되게 된다. 이에 따라 이민정책을 개혁해 보려던 오바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오바마의 계획을 지지하는 1천여명은 검은색과 붉은색 복장의 밴드가 경쾌한 마리아치(mariachi)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대법원 건물 밖에서 시끌벅적한 시위를 벌였다. 반면 소수의 오바마 비판자들도 별도의 집회를 가졌다.
오바마가 승소하기 위해서는 보수 판사 중 최소 1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오바마 측은 대법원장 존 로버츠 또는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의 지지를 내심 기대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를 대표한 도널드 베릴리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을 곤란한 질문으로 밀어 붙였다.
케네디는 오바마가 의회를 통과한 법률을 무시하고 ‘행정부 마음대로' 이민정책을 입안하면서 권한을 벗어난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대통령이 정책을 입안하고 의회가 시행하는 모양새다. 이는 전후가 뒤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6월말 경으로 예상된다.
오바마의 계획은 전과 기록이 없고 미 시민이나 영주권자 자녀를 둔 약 4백만의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지 않고 이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 허가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DAPA(Deferred Action for Parents of Americans and Lawful Permanent Residents)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이 가족들의 이산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약 1,100만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 문제는 올해 대선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이들 대부분은 주로 멕시코와 기타 중남미 국가에서 왔다.
이민은 이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유럽은 시리아, 이라크 등 분쟁 지역을 탈출한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26개 주들은 모두 공화당원이 주지사로 있는 곳이다. 이들은 오바마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벗어 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추방 법규의 시행과 관련, 단지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릴리는 연방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잠정적인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의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시행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버츠가 정부는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불법 이민자들의 체류를 허용하는 권한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그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다.
26개 주들은 앞서 오바마의 행정명령이 발효되기 직전 소송을 제기했으며 텍사스주의 한 연방 판사는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이어 뉴올리언즈의 제5순회항소법원은 지난 해 11월 1심의 판결을 확인했다.
오바마는 이민정책 외에도 총기 규제, 건강보험 등 기타 이슈에 대해 의회를 거치지 않는 행정 명령을 남발하면서 공화당 의원들의 분노를 사왔다. 오바마는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자신의 계획에 ‘사사건건' 반대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주장이다. (최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