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월15일 (로이터) 박예나 기자 - 북한 핵 및 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긴장이 극도로 높아졌다가 최근 전례 없는 속도와 양상으로 긴장이 낮아지고 있는데 원화 가치 측면에서의 반응은 무덤덤하다는 평가가 들린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의제에 비핵화 포함, 정상회담 개최,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포함한 합의 도출 등 숨 가쁘게 진행된 이번 북한발 대화 국면은 급기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결정돼 '초읽기'에 들어가게 됐다.
이렇게 숨 가쁘게 긴장 완화 국면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 금융시장은 초반 환호 분위기가 잦아든 가운데, 달러/원 환율은 1060-1080원 안에 갇혀 거래되고 있다.
이를 두고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도 원화가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세계 금융시장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를 함께 고려할 경우 북한 관련 리스크 완화는 원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한반도 훈풍, 외풍 영향력 줄여
하락 양상을 보이던 글로벌 달러는 지난 4월 중순부터 방향을 바꿔 위쪽으로 향했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의 성장 부진 조짐에 미국과 여타 국가들 사이의 금리 차가 확대됐고, 이에 미국 국채 금리와 달러가 보폭을 맞추며 강세로 내달렸다.
이런 가운데 주요 선진국 및 신흥국 통화들은 달러 대비 약세 폭을 크게 키웠고,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등 일부 국가들은 변동성이 크게 확대돼 위기설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도 원화는 큰 변동성을 보이지 않았다. 달러지수가 4월 중순부터 지난주까지 4% 이상 급등했고 다른 선진국 통화는 물론 싱가포르 및 대만 등 주요 아시아국 통화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원화는 1.5% 정도 절하에 그쳤는데, 그 배경에 원화 자체적인 호재 즉 지정학적 완화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 통화도 최근 글로벌 달러 상승 흐름을 반영했지만, 원화가 갇힌 흐름을 보인 데는 분명 지정학적 완화 요인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면서, 원화가 최근 호재를 반영하지 않는 게 아니고 상대적인 움직임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해석은 주요 해외 IB들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엿보인다.
HSBC는 최근 발표한 통화 전망 보고서에서 달러 강세 재개를 전망하며 달러/아시아를 대체로 상향 조정했지만 원화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를 고려해 제한적인 약세를 전망했다.
모간스탠리는 최근 FX 전망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요인만으로 원화 강세 랠리가 대대적으로 나타날 것으로는 보지 않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원화에 대한 긍정적인 모멘텀을 기대한다면서 단기적 관점에서 달러/원 숏을 권고했다.
▲ 달러의 역습?
작년 3분기 글로벌 달러의 약세폭이 깊었을 때 원화는 이를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북미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며 지정학적 위기가 커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분기 들어 지정학적 우려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원화는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을 뒤늦게 한꺼번에 반영했고 그 결과 달러 대비 약 8%까지 절상됐다.
이번에도 이같은 공식이 대입될 수 있는 만큼 북미 정상회담에서 추가적인 '서프라이즈' 호재가 없을 경우 원화가 강달러 흐름을 과하게 일시적으로 반영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위의 시장전문가는 "작년 원화가 북한 관련 우려로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와는 정반대 상황"이라면서 "다만 이를 감안하면 향후 원화가 외부 여건을 일시적으로 반영하며 변동폭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한반도 지정학적 우려가 일시적인 호재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한반도 지정학적 긴장 완화라는 호재가 단기간 내 사라지면서 원화 약세폭이 커질 국면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물론 원화가 이전보다 글로벌 달러 흐름에 연동될 가능성은 커지겠지만 원화는 이같은 호재를 기본적으로 반영하면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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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유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