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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엘리트 출신 서기관 모셔오더니…쿠팡, 납품업체에 잇단 '갑질'

입력: 2019- 06- 29- 오전 12:18
© Reuters.

최근 LG생활건강, 위메프, 우아한형제들이 쿠팡으로부터 대규모유통업법에 저촉되는 갑질을 당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제소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사안을 본부가 아닌 서울지방사무소에서 맡기는 등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4급 서기관 출신이 쿠팡의 대관 총괄이사로 근무하고 있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내부 직원인 A씨는 "공정위에 쿠팡 라인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상에 올렸다. A씨는 처음 쿠팡에 오고나서 기절할 뻔 했다며 "반품 건을 인수 인계 받아 공문을 정리해보니 '안팔려서 부진 재고라 반품합니다', 'MD 요청으로 반품 합니다'라는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반품은 제품에 심각한 하자나 훼손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공급가 인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단가 인상과 인하 건에 대해서도 증빙자료가 단 한 건도 없고 일주일에 한 두번씩 단가를 후려쳐대니 당연히 공문이나 다른 증빙자료가 없을 것"이라며 "쿠팡에 3년 다녔지만 공정위가 조사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쿠팡 직원도 A씨의 말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글을 달며 힘을 보탰다. 홈쇼핑 업체에 재직 중이라는 B씨 역시 "홈쇼핑이 저렇게 했다가는 난리난다"며 A씨의 주장을 거들었다.

쿠팡 관계자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납품대금 지급 지연과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쿠팡에 대한 갑질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이다. 쿠팡과 거래하는 한 납품업체는 지난달 최저가 할인비용을 대신 대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쿠팡의 경쟁사인 위메프가 주요 상품의 업계 최저가 판매를 선언하면서 가격을 낮추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상품 가격을 비슷하게 낮췄던 쿠팡이 가격 인하로 발생한 이익 손실분을 납품업체가 보전하라고 한 것이다. 핵심 거래처인 쿠팡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이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약 300만원에 달하는 이익손실분을 냈다.

쿠팡 관련 기사 댓글 등 온라인에도 쿠팡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납품업체들의 성토가 빗발친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최대 30% 납품단가 인하요청이 왔다"면서 "서면을 요구하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니 전화상으로 단가 인하를 압박하고, 상품 품목 리스트만 보낸 뒤 거기에 단가 인하 금액을 기재해서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어 "예전 자동차 대기업이 쓰던 전형적인 '단가 후려치기'의 악질적 수법인데 쿠팡이 그대로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대금 결제도 늦은 편"이라며 "결제를 5개월 이상 못받은 업체들이 많고, 소비자 구매가 확정되도 수 개월간 정산금 지급을 안하는 쿠팡에 대한 공정위나 중소기업벤처부의 조사가 왜 이뤄지지 않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공급 단가만 낮추던지, 수수료만 올리던지, 둘 중 한 가지만 해야하는데 둘 다 강요하는건 아니라고 본다"며 "힘 없는 제조업체는 죽을 맛인데 공정위는 왜 가만히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모두 불법이다. 쿠팡은 다른 온라인 쇼핑몰과는 달리 매출의 90%가 직매입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물건에 하자가 있거나,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반품할 수 없다. 대규모유통업법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납품받은 상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품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예외를 두고 있지만 납품업체들이 쿠팡을 향해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쿠팡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정황이 다수 포착되고 있음에도 공정위 4급 서기관 출신의 B씨를 쿠팡 대관 총괄이사로 데려온 이후 단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B씨가 공정위에 있을 때 관련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는 분명하다.

B씨는 2000년 4월 공정위 경쟁국 유통거래과를 시작으로, 경쟁정책국 경쟁정책과, 시장감시국 서비스업감시과, 경쟁정책국 경쟁정책과 지원근무, 심판관리관실 송무담당관실 근무, 카르텔조사국 카르텔총괄과 근무, 기획조정관실 정보화담당관 보임, 기획조정관실 정보화담당관을 지냈다. 그는 2016년 4월까지 공정위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곧바로 쿠팡에 합류해 대관 업무를 보고 있다. 공정위의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 2월 문재호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2018년도 대규모 유통분야 서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온라인쇼핑몰 등 불공정행위 유형에 대해서는 직권 조사를 통해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쿠팡 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취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쿠팡의 갑질을 모를리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정위는 '절차'와 '규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조사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번 쿠팡 조사를 공정위 본부가 아닌 서울지방사무소가 맡기로 한 것도 소극적 대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가 이 사건을 본부에서 다룰 중대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쿠팡의 위법 여부 종합점검이 아닌 신고 사안 중심 조사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본부가 사건을 맡으면 해당 기업의 불공정행위 전반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조사가 확대되고 제재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본부로 이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내부 기준과 규정에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쿠팡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공정위 퇴직자의 대기업 재취업이 공정위와 기업의 유착 우려를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쿠팡 관계자는 공정위 서기관 출신의 인사가 쿠팡에 합류한 것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해 회사가 입장을 내기에는 부적절하다"며 "우리를 제소한 다른 업체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언론플레이를 해서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자가 "쿠팡의 시장 거래가 공정했는가"라고 묻자 공정위와 쿠팡 관계자 모두 즉답을 피했다.

정치권도 일찍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발의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공정위가 온라인 쇼핑몰 수수료, 납품단가 등을 조사하고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쿠팡이 납품업체에 수수료, 광고비, 장려금을 통해 사실상 공급단가를 후려치며 손실을 만회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갑질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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