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모든 스탠드형 에어컨을 ‘3등급’ 이하로 낮춘 효율 등급제를 손보기로 했다. 서울 가산동의 한 가전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한경DB
정부가 오늘부터 전력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사면 구입가의 10%를 환급해주는 ‘통 큰 세일’을 시작합니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침체된 소비를 살리겠다는 취지이죠. 개인당 20만원 한도이니, 4인 가족이 한 개씩 구입하면 최대 80만원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고효율 등급을 받은 가전제품이 대상인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전기밥솥과 공기청정기, 김치냉장고, 제습기, 냉온수기, 냉장고 등은 모두 ‘1등급’만 해당한다고 안내했으나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탠드형 에어컨의 경우 ‘1~3등급’으로 명시돼 있지요.
정부가 스탠드형 에어컨에만 굳이 낮은 효율 기준을 적용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 기준의 전력 효율 1·2등급 제품은 없기 때문이죠. 현재로선 ‘3등급’이 최고 효율 등급이란 의미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됐을까요. 사실 작년 9월전까지만 해도 ‘1등급’ 에어컨이 시장에 상당히 많았습니다. 효율 기준이 바뀐 건 같은해 10월부터였지요. ‘에너지 효율 등급제의 변별력을 높이고 제조사 간 에너지 절감 및 기술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갑자기 ‘1등급 에어컨’이 자취를 감춘 겁니다. 에어컨의 효율성이 나빠진 게 아니라 단지 기준이 달라진 게 이유입니다. 1등급 제품을 최소 10~20% 유지하려고 했던 정부의 당초 계획과 달리 시장에서 아예 사라져버리는 기현상이 생긴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에어컨 제조사 기술이 세계 최고란 점에서 국내 최고 등급은 세계 최고 효율이란 의미”라며 “국내 기술로도 현재의 에어컨 1~2등급 기준을 맞출 수 없고 앞으로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역시 에어컨의 효율 기준이 잘못 됐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작년 에어컨 효율 등급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해외의 시험 기준을 잘못 들여왔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재조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3년마다 효율 기준을 조정해 왔는데, 작년 하반기엔 에어컨의 등급 기준을 ‘실수로’ 과다 산정했다는 겁니다.
다만 정부가 다시 개정 작업에 나서더라도 업계 공람 등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효율 등급제의 재시행 시기는 내년 10월쯤 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내년 말은 돼야 시장에서 ‘1등급’ 스탠드형 에어컨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정부의 작은 실수가 제조업계와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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