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가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선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세 번째)을 포함한 업종별 중소기업계 대표 130여 명이 참석해 229건의 규제 개선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허문찬 기자 2000여 개 국내 중소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업체는 내년부터 업계 전체 연간 영업이익(200억원)을 웃도는 265억원의 환경부과금을 부담해야 한다. 세계 유일한 환경 규제 탓이다. 서울 종로에서 의료기기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A씨 부부는 대학생 자녀까지 동원해 최근 판매한 수백 개의 체온계 관련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품목별로 어디에 얼마나 팔았는지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는 130여 명의 중소기업 대표가 “‘모래주머니’는 전혀 줄지 않았다”며 성토를 쏟아냈다. 중소기업계는 229건의 규제 해소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김복덕 한국전등기구LED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환경 유해성도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경부가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LED 판매 물량의 일부를 의무 수거하도록 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내년 1월 시행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판형 LED 조명에 EPR을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주장했다.
6만9000여 개 의료기기업체도 신설된 식약처 규제에 허우적대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7월부터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체온계 혈압계 콘택트렌즈 등에 대해서도 추적 관리가 가능하도록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제도’를 시행했다. 신동진 한국의료기기유통협회장은 “인공심장박동기 주사기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의료기기뿐 아니라 일반 제품까지 추적 관리하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中企, 229건 규제완화 건의
중대재해 조치 범위 과도한 탓에 일부 사고에도 모든 사업장 적용경남 거제 한 대형조선소 사내 협력업체 A사는 최근 다른 도크 선박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로 고용노동부가 2주간 전체 조선소에 대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공정이 연기돼 수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 조선소 전체로는 250개 협력사가 250억원의 손실을 보고, 현장 근로자 2500여 명도 2주간 일손을 놔야 했다. A사 대표는 “여의도만 한 크기의 조선소 안에 축구장 6~8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도크만 7~8개이고 도크당 간격이 수㎞ 떨어져 있다”며 “왜 같은 조선소라는 이유만으로 사고 한 번에 전체 근로자가 손해를 봐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中企 발목 잡는 규제 여전”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선 환경·노동·인증·검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각종 규제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애로가 쏟아졌다. 중소기업 대표들의 호소가 길어지면서 이날 행사는 1시간가량 연장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찬 일정까지 취소하고 환경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에 개선을 지시했다.
핀포인트 규제가 아니라 무차별적 규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대재해 발생 시 지나치게 넓은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 범위에 대한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삼성중공업 사내 협력사인 성해산업의 박재성 대표는 “한 군데에서 사고가 나면 도크 전체를 작업 중지시키는 것도 모자라 회사 전체 작업을 중지시킨다”며 “이런 조치는 사고 예방 목적이 아니라 기업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손보기식’ 징벌적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부의 작업중지명령으로 사고와 관련 없는 사업장 내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생계마저 위협받는 처지라는 호소였다.
최근 폭우 피해로 일감이 폭등한 아스콘업계는 환경부가 아무도 지킬 수 없는 규제를 내놔 업계 전체가 불법 업체로 전락했다고 하소연했다. 도로 아스팔트 포장과 보수에 주로 쓰이는 아스콘은 국내 500개 업체 중 70%인 350개가 도심지 인근(계획관리지역)에 분포해 있다.
환경부는 2020년 7월 아스콘업계의 특정대기유해물질 8종에 대한 추가 배출 규제를 시행했다. 이 규제로 계획관리지역 내 업체는 사실상 모두 불법 업체가 됐다. 서상연 서울경인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업계가 수백억원을 투입해 개발하려고 했지만 규제를 맞추기 위한 기술 구현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15일에서 2개월로 늘어난 크레인 검사타워크레인업계는 잦은 검사 주기(6개월)를 1년으로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사가 너무 잦아지는 바람에 검사 소요 시간이 길어져 중대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길 한국타워크레인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과거엔 검사하는 데 15일 걸렸는데, 최근엔 2개월이 걸린다”며 “검사 일정에 따라 모든 타워크레인 공정을 한꺼번에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중대 사고가 더 잦아졌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타워크레인 규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인증도 별 차이가 없으면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포에서 수도꼭지, 샤워기를 제조하는 대정워터스의 김명희 대표는 이날 KS·KC·환경표지인증 사례를 들며 “중복되는 인증제도를 과감하게 통폐합해달라”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월부터 시행한 2등급 의료기기에 대한 공급내역 보고제도도 도마에 올랐다. 국내 6만9000여 개 의료기기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체가 80%인 6만2000여 개에 달해 정부에 보고할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 대해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규제 대응 역량이 낮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의 애로를 전달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韓만 있는 'LED조명 규제'…여전한 中企 모래주머니
중소기업중앙회, 규제개혁 대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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