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 6월 연 3.7%를 넘었던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3% 선까지 밀렸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까지 밟았지만 국채 금리는 오히려 연 2%대 진입을 눈앞에 둔 것이다. 채권시장은 이미 경기 침체에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채권시장 지표물인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29일 0.121%포인트 내린 연 3.009%에 마감했다. 장중엔 연 3% 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지난 6월 17일 기록한 연고점(연 3.745%)과 비교하면 0.736%포인트 하락했다. 채권 가격 기준으로는 20%가량 급등한 것이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올해 연 1.855%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후 고물가, 미국 중앙은행(Fed)과 한국은행의 통화긴축 등으로 급등했지만 최근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하락세로 전환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올 상반기 한국 경제를 지탱한 수출과 소비가 하반기에는 부진할 것이 확실시된다”며 “경기 둔화 우려가 채권시장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채권시장 지표물인 10년 만기 미 국채도 29일 연 2.658%로 연고점(연 3.479%)보다 0.821%포인트 내렸다. 美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커지는 'R의 공포'
韓 3년물 한달반 새 0.73%P↓…물가 정점론도 하락 요인으로 한국과 미국의 국채 금리가 급락하는 건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한국은행이 지금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채권시장은 보는 것이다.
당장 미국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올 1분기에 연율 기준 -1.6%, 2분기에 -0.9%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학계는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면 경기침체로 본다. 경기침체 징조로 해석되는 장·단기 금리 역전은 이미 지난 4월부터 나타났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2.658%, 2년물 금리는 연 2.8905%였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정상이다.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되면 장기채인 10년물 금리는 하락하는 반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오름세를 보이거나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면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
한국에서도 지난 6월 10일 이후 7월 28일까지 한 달 넘게 국채 3년물 금리가 30년물 금리보다 높은 상태가 이어졌다. 김승혁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3년물과 30년물 금리 역전이 직전 장(7월29일)에서 풀렸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추세적으로 여전히 채권시장은 경기 침체 전망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 정점론’에 무게가 실리는 점도 국채 금리 하락 요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9월 말 또는 늦어도 10월 정도가 물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가가 꺾이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커진다.
유럽 채권시장도 경기 침체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 한 달 전 연 1%대였던 독일의 2년만기 국채 금리는 현재 연 0.273%로 떨어졌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만기 국채 금리 차이는 2.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2020년 5월 이후 2년여 만에 최대치다. 경기가 침체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독일 국채에 시중자금이 몰리면서 두 나라 금리 격차가 벌어진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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