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경기 시화기계유통단지 내 한 대형 중고 기계 유통업체에서 직원이 산업용 기계 매물을 점검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은 요즘 하루에 3시간씩 주식 공부를 하고 있다. “본업인 기계 부품 납품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부업인 주식 투자로 이달 700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자금이 남아 투자한 것이 아니라 은행 빚에 허덕이다가 생존을 위해 투자한 것이다. 인근 기계설비업체 사장은 “부동산 차익 거래로 지난해 제조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겨우 메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 제조업이 누적된 원자재 가격 상승, 획일적인 노동 관련 규제 여파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생산과 수출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중소 제조업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생계수단인 기계설비를 내다 파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더 이상 제조업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적자 경영 누적…경쟁력 잃어”
휴·폐업이 급증하면서 중고 기계설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매수세는 찾기 힘든 상황이다. 한 기계 유통업체 대표는 “최소 수천만원은 받아야 할 7t짜리 프레스 설비도 고철값인 400만원에 거래된다”며 “고철값이 1년 새 ㎏당 180원에서 550원으로 세 배로 오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국 칭다오에서 공기압축기 제조 사업을 하던 D사는 2017년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면서 국내로 유턴한 기업이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인력난이 심해지며 은행 빚만 늘다가 결국 지난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주로 저임금 노동인력 비중이 큰 중소 제조업은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이 42% 급등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1월 300인 미만, 7월 50인 미만 기업에 본격 시행된 주 52시간제도 매출 급감과 인력난을 부추기고 있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초과근무가 불가능해지면서 일감을 많이 따올 수 없고, 한국 기업의 강점인 ‘빠른 납기’도 불가능해져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천의 한 섬유업체 사장은 “주 52시간제로 매출이 반토막났다”며 “미국 유럽 중동에서 받았던 일감을 주 52시간제가 없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빼앗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부터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이 급등하면서 이제는 수익도 내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중소 제조업체의 42.1%는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는 수탁기업이다. 대부분 원자재를 조달해 임가공을 거쳐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지 않아 적자 경영의 수렁에 빠졌다. 2세 외면에 제조업 명맥도 끊길 판제조업의 열악한 환경에 지속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주로 1950~1960년대생인 중소 제조업체 창업 1세대가 은퇴할 시점이지만 2세가 승계를 거부하면서다. 경남 창원에서 대형 조선기자재업체를 운영하는 70대 H회장도 2세에게 기업승계를 포기하고 자산운용사를 차려 넘겨주기로 했다. H회장은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정부 규제만 늘어 더 이상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생활용품 제조업체 대표는 “제조업을 하면 고생만 한다는 인식 때문에 2세가 제조업을 물려받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서울대 특임교수)은 “코로나19로 붕괴된 경제를 회복하는 데 제조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최근 자동차 반도체 대란, 철근 대란 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서 나타났듯 제조업은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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