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리스크’가 중국 기업에 베팅한 글로벌 투자자들을 공포로 밀어넣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주식 엑소더스에 중국과 홍콩 증시가 급락했다. 27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49%, 홍콩 항셍지수는 4.22% 하락했다. 항셍지수는 올해 고점을 찍었던 2월 대비 20% 가까이 떨어졌다. 중국 공산당이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에듀테크·음식 배달 기업에까지 규제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이날 알리바바(-6.35%) 텐센트(-8.98%) 메이퇀(-17.66%) 등 플랫폼 기업은 물론 국내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 주식인 항서제약도 7.97% 하락했다. 규제 리스크에 미·중 갈등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큰손’들도 투매에 나섰다.
홍콩·중국 주식시장에서 ‘패닉 셀링’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주가 대거 상장돼 있는 홍콩 항셍지수는 지난 26일 4.13% 하락한 데 이어 27일 4.22% 급락했다. 장중에는 하락폭이 5%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주식에 대한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낙폭을 키웠다고 블룸버그통신은 27일 보도했다.
글로벌 채권과 외환 시장도 요동쳤다. 중국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달러와 엔화로 돈이 몰렸고,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4월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리쿤쿤 궈위안증권 트레이더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해외 자본이 중국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대규모로 빠져나간다는 소식이 투자 심리를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중국 주식 엑소더스의 조짐은 중국 정부의 사교육 금지 조치에서 시작됐다. 관련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 23일부터 26일까지 2거래일간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 뉴오리엔탈에듀앤드테크가 69.69%, 탈에듀케이션은 78.56%, 가오투테크에듀는 73.90% 급락했다. 중국 정부가 24일 발표한 ‘의무교육단계의 학생 과제 부담과 방과후 과외 부담 감소를 위한 의견’이 발단이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 교육업체들은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으며 비영리기구로 전환해 교육사업을 해야 한다. 이미 상장한 기업도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학원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다. 경쟁 확산을 막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출산 기피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플랫폼 기업 규제를 ‘빅테크 길들이기’ 정도로 인식했던 투자자들이 에듀테크 기업 규제를 계기로 중국 정부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기업은 물론 산업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됐다는 분석이다. 다이밍 화천자산관리 펀드매니저는 “과거 시장은 특정 산업을 대상으로 한 정상적 규제를 예상했지만, 지금은 정부 필요에 따라 한 산업 전체나 일부 선도 기업을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중국 증시가 27일 정부의 규제 여파로 하락했다. 이날 상하이종합지수는 전날보다 2.49% 하락한 3381.18, 홍콩 항셍지수는 4.22% 내린 25,086.43으로 각각 마감했다. 홍콩 증권거래소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산업까지 망가뜨리는 전방위 규제중국 정부의 규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국가시장감독총국은 26일 ‘인터넷 음식 배달 서비스 플랫폼 의무 실천 및 배달원 권익 수호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메이퇀과 알리바바 계열 어러머 등 음식 배달 서비스 플랫폼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이 사회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홍콩에 상장된 메이퇀 주가가 26일 13.76% 하락한 데 이어 27일 17.66%까지 빠진 배경이다. 인터넷기업 텐센트에 대해서는 음악 스트리밍 분야 독점 판권을 포기하라고 명령하면서 주가가 8.98% 하락했다.
미국에 상장했다가 중국 정부의 철퇴를 맞은 차량 공유 플랫폼 디디추싱도 상장 한 달도 안 돼 주가가 42% 급락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5개월 새 7650억달러(약 883조원) 사라졌다. 23일 나스닥 골든드래건차이나지수는 8.50% 급락한 데 이어 26일에도 7.2% 하락했다. 지수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98곳을 편입하고 있다.
편입 기업의 시가총액은 지난 2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와 비교해 7650억달러나 줄었다. 23~26일 이틀간 미국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저가 매수는 이르다” 경고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은 주가 급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대니엘 소 CMB인터내셔널 투자전략가는 “가장 큰 리스크는 규제당국이 탄압의 영역을 어디까지 넓힐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아직 저가 매수를 하기엔 이르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각종 규제를 시행하면서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만큼 더 조심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올리버 존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상황은 중국 당국이 광범위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의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UBS,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중국 주식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UBS는 최근 중국 주식의 투자 의견을 ‘선호’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당국의 규제로 기존 주주들이 중국 주식을 대규모로 매각하는 상황이 추가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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