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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북쉘프/디즈니만이 하는 것

입력: 2020- 11- 09- 오후 02:30
© Reuters.  [한경 CFO Insight] 북쉘프/디즈니만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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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올해 2월까지 15년간 CEO로서 디즈니 (NYSE:DIS)를 이끌었던 밥 아이거는 오늘날 미국 재계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경영자다. 과감한 인수합병과 공격적인 투자로 정체에 빠져있던 디즈니를 몰라보게 달라지게 만든 능력과 더불어 겸손하고 부드러운 인품이 그를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이름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로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ABC 방송사의 말단 스태프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그는 이후 ABC가 디즈니에 인수된 뒤에도 고위 경영진으로서 남아 계속해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디즈니 CEO 취임 이듬해인 2006년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픽사를 인수하고, 2009년엔 과 의 제작사 마블을, 2012년엔 의 루카스 필름을 그리고 2019년엔 영화사 21세기폭스를 차례로 인수하며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그가 이처럼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인들을 잇달아 인수하는 대담한 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건 말단 스태프로 시작해 한 계단, 한 계단 위로 올라가면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분석력과 과감한 실행력을 갖춰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밥 아이거 역시 다른 최고의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20대의 애송이였던 그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선사했던 인물은 ABC스포츠에서 일하던 시절 그의 상사였던 룬 얼리지였다. 밥 아이거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룬 얼리지는 43세의 임원으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ABC 스포츠의 간판 프로듀서(PD)로 활약하고 있었다.

밥 아이거의 자서전 에는 그가 룬 얼리지에게 배운 뒤 평생에 걸쳐 실천해왔던 여러 가르침이 나오는 데 그 중 하나만 살펴보자.

1974년 가을 밥 아이거는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리는 ‘메인이벤트’ 콘서트 현장에 투입된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콘서트를 생중계하는 방송이었다. 방송의 제작 책임자는 룬 얼리지였다.

콘서트 하루 전날 리허설을 마친 룬 얼리지는 부하 직원들에게 모든 걸 싹 다 갖다 버리고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라고 지시한다. 무대도 다시 만들고, 조명도 새롭게 배치하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개 멘트도 다시 쓰라는 지시였다. 그냥 무조건 다시 하라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맹렬히 지적했다.

말단 스태프였던 밥 아이거의 눈에는 리허설 부대도 충분히 훌륭해 보였지만 언제나 최고를 추구하는 룬 얼리지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던 무대였다. 룬 얼리지의 지시를 받은 다른 스태프들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생방송까지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모든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청자들에게 더 나은 쇼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밤새워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낸다.

이런 노력 덕분에 초보였던 밥 아이거가 보기에도 전날의 리허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대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이 때의 강렬했던 경험에 대해 밥 아이거는 다음처럼 말한다.

“웬만큼 괜찮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자기가 맡은 일을 최고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데드라인 앞에서도 대담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전형적인 룬의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적당히 좋은 건 좋은 게 아니며, 그 무엇도 최고를 추구하는 자세를 가로막아 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었다. 최고의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 가차 없는 완벽주의에 대한 추구야말로 그가 이날부터 지금껏 줄곧 실천해온 삶의 자세였다.

말단 스태프로서 일하던 시절 그는 매일 새벽 4시 15분에 일어나 그날의 방송을 준비했는데, 이 습관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고의 성과를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을 통해 그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던 한 소년이 스스로의 힘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설명한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심 많은 독자 뿐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는 책이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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