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부회장이 13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재수감된 뒤 광복절 가석방 허가를 받아 출소했다. /허문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곧바로 서울 서초사옥을 찾았다. 첫 행선지로 자택이 아니라 집무실을 택한 것이다. 정상적인 경영 복귀를 예고한 행보라는 분석과 함께 이른 시일 안에 공식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그는 구치소 정문을 나서면서 “국민 여러분께 큰 걱정을 끼쳐드렸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차량은 서울 한남동 자택에 들르지 않고 오전 11시께 서초사옥에 도착했다. 그는 회사 경영진을 만나 지난 7개월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요 현안을 보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지 45일 만에 공식 일정을 시작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전에 기획된 정식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반도체 투자 등 시급한 경영 현안을 챙기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국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엄중한 위기 상황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고 덧붙였다.이재용 "국민께 큰 걱정 끼쳐드려…기대·우려 잘 안다"
서울구치소 앞에서 소회13일 오전 10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안쪽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정문 인근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격앙되기 시작했다. 가석방을 지지하는 단체 회원들은 “이재용, 이재용”을 연신 외쳤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가석방 반대 측 관계자들은 비난 섞인 함성을 쏟아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1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삼성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이 부회장은 구치소 문을 나서 취재진을 향해 20m가량 천천히 걸었다. 당황하진 않았지만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3초가량 숨을 고르다 “우리…”라고 입을 뗐다. 곧이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 잘 듣고 있다”이 부회장은 고개를 들고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미세한 떨림은 있었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그는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경영계획과 반도체·코로나19 백신 관련 질문을 쏟아냈지만 별도의 답을 하진 않았다. 이 부회장은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G80 승용차에 올라 정문을 나선 지 3분여 만에 서울구치소를 빠져나갔다.
가족들이 마중을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으나 승용차에는 운전기사 외에 다른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자신 외에 가족에게 불필요한 이목이 쏠리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치소 앞에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찬반을 외치는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9시 구치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가석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제발전 응원합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주세요’ 등이 적힌 현수막을 걸고 석방을 환영했다. ○경영으로 바로 복귀…과감한 행보이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나와 바로 향한 곳은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이었다. 취업 제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행보라는 평가다. 그만큼 일선에서 경영을 챙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날 이 부회장은 김기남 DS부문장(부회장), 김현석 CE부문장(사장), 고동진 IM부문장(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잇따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전 세계 반도체 패권 전쟁을 구치소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면회 시간이 제한돼 ‘옥중 경영’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본인이 챙겨야 할 현안의 우선순위를 이미 정해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소에 맞춰 문 대통령 입장 표명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출소 당일 가석방과 관련한 입장을 내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문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백신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이런 국민의 요구가 있으니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공식 행보가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관련된 일정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른 경제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도 본인이 석방된 뒤 당면한 국가적 현안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임도원/의왕=이수빈·최한종 기자/박신영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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