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 배터리·자율주행차 등 한국의 미래 성장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LG화학 오창공장(충북 청주)에서 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이 추가 경제 제재 조치로 전략물자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국내 주력 산업이 전방위적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배터리·자율주행차 등 미래 성장산업의 소재·부품뿐 아니라 공장에 설치하는 공작기계도 상당 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관련 원천기술·특허 보유한 일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부터 일본 수출제한 등에 대비해 일본 전략물자 1100여 종 가운데 100대 품목을 추려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다”고 7일 밝혔다. 전략물자에는 전자·화학뿐 아니라 정밀부품·공작기계 등 식료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수출품이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일부 제조업체와 화학소재 기업의 일본산 제품 비중과 대체 가능 여부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산화율이 낮은 화학소재 부문이 집중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화학소재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외에 대표적 성장산업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업체들은 회사별로 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론 일본산 소재 대부분을 국산화하거나 다른 수입원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서도 “핵심 소재를 바꾸려면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4대 배터리 핵심소재 가운데 LG화학은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으로부터 양극재를 일부 납품받고 있다. 음극재는 미쓰비시화학이 LG화학과 삼성SDI에 공급한다. 분리막 부문에선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가 세계 1, 2위를 달리고 있어 한국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잘 접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품질 바인더, 동박 제조에 쓰이는 설비, 전해액 첨가제 등은 일본 기업들이 원천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수출 규제에 따른 영향이 핵심소재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밀기계도 일본산이 우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3만여 개의 부품 가운데 7000여 개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연구실장은 “자동차 부품업계가 연간 수입하는 54억달러 규모 부품·소재 가운데 10억달러가 일본산”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초정밀 카메라용 광학렌즈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수소전기차와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모터의 부품도 일본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차 소재는 대체품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기계류 수출을 제한하면 산업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산 기계류는 이미 국내 생산 라인에 대거 깔려 있다. 한국공작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공작기계 수입 규모는 12억6486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일본산이 5억4064만달러로 42.7%를 차지했다.
일본산 기계는 품질에서 독일과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투는 데다 물류비를 포함한 수입가는 독일산의 70% 수준이어서 국내 기업 선호도가 높다. 특히 소형 소재·부품을 깎아내는 정밀기계는 일본에 강점이 있어 대기업 협력사들이 주로 쓴다는 게 공작기계협회의 설명이다. 국내에선 현대위아, 두산공작기계, 화천기계 등이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으나 10년 내외의 격차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완성차 업체 1차 협력사 대표는 “현장 기술자들이 일본 정밀기계에 숙달돼 있는 데다 독일산은 너무 비싸다”며 “일본산 수입이 막히면 개별기업 수준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가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김재후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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