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12월06일 (로이터) -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제안한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됐다고 해서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처럼 이탈리아 국민들이 유럽연합(EU)이나 유로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EU가 자체적 경제 어려움 외에도 브렉시트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는데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이탈리아의 국민투표 결과는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렌치 총리의 사임을 초래한 이번 투표 결과는 유럽에 있어 상당한 후퇴를 의미한다.
렌치 총리의 사임으로 이탈리아는 내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고 아마도 영국과 함께 선거를 치르는 국가가 됐다.
이번 투표 결과는 또 프랑스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과 같은 다른 유럽 개혁파들에게 경고 신호가 됐다. 피용은 내년 봄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의 국내 어젠다들을 추진하기 위해 자그마치 다섯 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국민투표 결과는 다행히 금융시장에는 즉각적으로 큰 영향이 없었으나 이탈리아 은행권과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는 앞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8일 정책회의를 여는 유럽중앙은행(ECB)에게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ECB는 이번 회의에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6개월간 현행 규모로 연장할 것으로 로이터 조사에서 전망됐다. (관련기사 한 전직 관리는 "국민투표 결과가 당장 이탈리아를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은행권 문제들과 대규모 공공부채, 높은 실업률에 직면해 있는 이탈리아가 시간을 빼앗기게 될 것이며 개혁 추진이 느려질 위험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 브렉시트 당시와 비슷
렌치는 수십년간 정치적 격변이 지속돼 온 이탈리아에서 그나마 안정성을 지켜낸 인물로 평가 받았으나 이번 투표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패했다.
렌치의 이번 패배는 같은 좌파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 후 불과 며칠만에 이뤄진 것이다.
렌치의 사임으로 내년 이탈리아는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됐으며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제1야당 5성운동의 입지가 강화될 리스크가 있다.
지난 6월 브렉시트 투표가 데이비드 카메론 당시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낸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EU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성향의 야당들이 또 한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 직후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탈리아 국민들이 렌치와 EU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패라지 대표는 "이번 투표는 나에게 개헌보다는 유로에 대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과는 달리, 여론 조사 결과는 보면 여전히 다수의 이탈리아 국민들이 EU와 유로존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EU에 대한 반대이기보다는 어려운 경제 여건 하에서의 렌치의 개혁 추진에 대한 거부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내년 초 유럽 정치적 이벤트 줄줄이 예정돼 있어
유럽 지도자들은 내년 3월 EU 창설의 모태가 된 로마조약 서명 60주년을 맞아 로마에서 회의를 갖고 브렉시트 이후 EU의 비전을 제시하기로 했으나 현재로선 누가 3월 회의를 주최할지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내년 3월에는 또 네덜란드 총선이 예정돼 있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3월 말 이전까지 EU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해 회원국들에게 브렉시트 탈퇴 협상의 개시를 통보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불과 한 달 후에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예정돼 있다.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르펜과 피용의 맞대결이 예상된다. 현재 여론 조사에서는 공공부문 인력 감축과 주당 노동시간 확대 등을 주장하는 피용이 르펜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대선 1차 투표가 시행되며 여기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5월 1차 투표 1∼2위가 결선 투표를 벌인다.
* 원문기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