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4월9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한국은행은 지난 8일 오후 4시30분부터 10분간 RP 1일물을 0.75%에 매입하는 입찰을 실시했다. 지준 마감일에 전격적으로 시행된 RP 매입이었다. 1조원이 응찰해 전액 낙찰을 받았다.
은행이 한은 자금조정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RP 매입으로 구제의 손길을 내민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한은이 무제한 RP 매입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 특수 시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주열 한은 총재가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을 넉넉하게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만 해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지준 마감일에 일부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일부 은행 자금 담당자가 실수했을 수도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렇게 되니 하루 전인 7일 진행한 통화안정예치금 경쟁입찰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안계정 입찰은 통상적으로 화요일에 이뤄진다. 하지만 지준 마감일 직전엔 한은의 판단에 따라 입찰 여부가 결정된다.
그리고 한은은 선택을 내렸다. 이날 한은은 10조원 규모로 통안계정 입찰을 진행했다. 적수를 감안할 때 지준 마감일까지 20조원을 시중에서 회수한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대규모로 자금을 회수해 놓고 불과 하루 만에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는 점이다.
시중 자금판을 손바닥 보듯 하고 있는 한은이 왜 이런 혼란스러운 행보를 보인 걸까?
한은 입장에선 은행의 입장을 너무 많이 봐주다 스텝이 꼬인 것일 수 있다.
대규모 자금 공급이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한은이 10조원 규모의 통안계정 입찰을 감행한 것도 결국 은행의 지준 운용을 최대한 고려한 안배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지준 마감일 일부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재 시국에 대한 한은의 다소 나이브한 상황 인식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단기자금시장 사정이 조금 풀렸다고 해도 여전히 지금은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이다. 현재 한은의 모든 정책 초점은 시장 전반으로 유동성이 파급되는 속도를 키우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이 때문에 한은이 무제한 RP 매입을 하는 것이고 전례를 깨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전에 차액결제 담보 증권의 제공 비율 20%p 인하도 발표한 것일 테다.
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한은 자금조정예금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그만큼 머니마켓펀드(MMF)로의 자금 집행이 늘어나고 시장에 돈이 돌게 된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돈이 몰려들면 실제로 투자를 집행하는 기관 운용역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한번 사볼까?' 하면서 우량한 물건부터 조금씩 매수세가 붙고 시간이 지나면 매수 온기가 시장 전반으로 뻗쳐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지준 운용이 어렵다는 은행 자금부의 소리에 한은이 일일이 맞대응해줄 필요는 없는 시점이다.
한은이 좀 더 분명한 의지를 갖고 공개시장 운영을 해 나갈 때 시장 안정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편집 유춘식 기자)